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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북한을 ‘反서방’ 핵기지로 삼은 중·러의 세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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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48회>

조선일보

2023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설 75주년 기념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KC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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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불변의 주적인 대한민국을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면서 전쟁 불사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북한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후 김정은의 의중에 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쏟아냈다.

대내적으로 민심을 동요하게 하는 한류 문화상품의 유입을 차단하고 대민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김씨 왕조의 자구책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핵무장에 성공한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앞세워 군사적 협박을 가했다는 풀이도 나왔다.

물론 둘 다 일리 있는 해석이지만, 그 정도 설명만으로는 “우리민족끼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통일”을 지상과제로 내걸어온 북한이 돌연히 반민족적 반통일 노선을 천명하게 된 아이러니를 제대로 설명할 순 없다. 김정은이 “적대적 2 국가론”를 선언한 까닭을 밝히기 위해선 보다 거시적인 국제정치의 관점이 필요하다.

러·중·이·북 “악의 동조”와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

작금의 국제정세를 보면,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이 “악의 동조(the alliance of evil)”를 이루고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견고하게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2022년 2월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지금까지 지리멸렬한 지구전을 펼쳐왔다. 그때부터 러시아는 자체적으로 무기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북한, 이란에서 재래식 무기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의 방위산업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계 장비, 초소형 전자 부품 등을 제공하고 있다. 미 국무장관 블링큰(Anthony Blinken)이 지적하듯, 북·중·이의 지원을 멈추면 러시아는 결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러·우 전쟁이 점점 고조되며 미궁으로 빠져들 무렵인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전격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초강수를 뒀다. 물론 그 배후에 이란이 떡 버티고 있었다. 이란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등의 조직에 자금과 군사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 훈련 및 기밀 정보까지 제공해 왔다. 국제사회는 이란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량의 군사용 드론과 미사일을 제공하는 그 대가로 러시아에게서 핵 기술과 우주 정보를 받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이 결탁한 상황에서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뒤에서 지원한 정황이 번연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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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9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만난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이란의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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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폭격하여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1960-2024)를 제거했다. 이틀 후인 9월 30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지 전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상황에서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테헤란을 찾아가서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과 만났다. 공식적으로 양국은 원전, 무역, 농업 등 양국 간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공동 대응이 더 급박한 의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국제정치의 큰 그림을 보면, 김정일의 “적대적 2 국가론” 선언 역시 성마르고 난폭한 한 독재자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 러·중·이·북 “악의 동조” 속에서 이뤄진, 치밀하게 계산된, 북한의 군사·외교적 전술이란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의 “조국 통일”이라는 김일성의 지상명령을 폐기하는 대신 러·중·이와 결탁하여 反서방 연대를 이룸으로써 정권 유지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 점에서 김정일의 반통일 선언은 대한민국과 미국 등 자유 진영보다는 러시아, 중국, 이란을 향한 메시지라 볼 수도 있다. 남한과 물밑에서 민족적 화합 따위를 도모하지 않겠으니 4국의 반서방 연대로 부디 휴전선 이북의 북한 땅을 흔들림 없이 지켜달라는 간청인 셈이다.

북한을 반서방 핵기지로 삼은 중국과 러시아

물론 중국과 러시아으로선 남북한의 확실한 분열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혹시라도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에 통합되는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막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참가 의지를 꺾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이탈을 용납할 수 없듯, 중국 역시 북한이 자유 진영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 중국에 있어 북한의 존재는 ‘이를 가린 입술’ 정도가 아니라 자유의 도도한 물살을 막는 든든한 댐과도 같기 때문이다.

2003년 이래 6자회담의 외교 쇼를 펼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실상 북한의 핵무장을 방조했다. 북한의 핵무장을 실질적으로 방조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은 대한민국,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 진영을 향한 핵 단추를 갖게 되었다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중·러의 지원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중·러의 괴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에서 북핵은 미국발 전쟁을 막는 정당 방어용 무기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라는 괴뢰 정권을 이용해서 자유 진영을 위협하는 대량 살상용 무기이다. 반서방 연대의 전초기지로서 북한은 실질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핵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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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서 만나 악수하는 김정은과 푸틴./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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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각에선 북·중 갈등을 과장하고 있지만, 중·러 사이에서 생존의 방도를 모색하는 북한은 절대로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중국과 마찰을 빚는 김정은의 모든 언행은 중국이 관용하는 범위 내에서 벌이는 자주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2024년 7월 21일 발표된 코트라(KOTRA)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북한은 대외 무역의 98.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6월 김정은은 평양에서 푸틴을 만나 러시아를 끌어당기며 중국에 슬쩍 밀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지만, 북한의 대중 의존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행동이 실은 외교적 연막이라 여겨진다.

북한의 대중 경제의존도를 보면, 김정은은 절대로 시진핑을 거스를 수 없음이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절대로 김정은을 놓쳐서는 안 된다. 만약 북한에 반중·친미 정권이 선다면, 1950~1953년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구호 아래 90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면서 중국의 영향권에 묶어둔 “조선”이라는 번국(藩國, 울타리 국가)이 송두리째 날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지켰다는 점에선 현재 러시아도 구소련에서 계승한 지분을 갖고 있다. 중·러는 모두 북한이 자유 진영에 맞서는 반서방 동맹의 전초기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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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5일 평양에서 열린 “6·25 미제 반대 투쟁의 날 군중대회”./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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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겉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북한 정권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서 핵무장을 방조했을 개연성이 높다. 중·러의 묵인과 방조 위에서 핵무장에 성공한 북한은 그 대가로 국제사회의 제재에 부딪혀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극단적 고립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그 결과 김씨 왕조와 소수 엘리트를 제외한 북한의 모든 인민은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궁핍하고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그렇게 중·러·북의 동조가 만들어낸 한반도의 최대 비극이다. 돌려 말하면, 러·중·이·북의 동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맞서는 미국의 전략은?

러·중·이·북 4국의 “악의 동조”가 강화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최근 미국의 조야에선 점점 가속되는 중국의 군비 강화에 대항하여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30년대 독일·일본·이태리 3국의 추축국 동조가 이뤄질 때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무기고(the arsenal of democracy)”를 확충해야 한다면서 군사비를 대폭 증강했다. 미국 전략 국제 센터(Center for Strategic & International Studies)의 방위안전부 대표 세스 G. 존스(Seth G. Jones)는 지난 10월 2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중국은 전쟁 준비 완료(China is Ready for War)”에서 바로 지금 이때가 미국이 다시 한번 루스벨트의 선견지명을 발휘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의 논거는 다음 일곱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0년 전까지도 중국은 세계 100위권에 드는 방산 기업을 갖지 못했지만, 지금은 세계 10대 기업(방위와 비방위 합산) 중 중국 기업이 네 개나 포함되며, 1위와 2위가 모두 중국 기업이다. 둘째, 중국의 방위 산업은 단순한 양적 팽창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지휘, 조정, 통신, 전산, 사이버, 정보, 감시, 정찰 등 모든 분야에서 최첨단의 군사 장비와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이다. 셋째, 특히 중국의 해군력은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중국 해군력이 아직 미국에 비하면 뒤처져 있는 분야가 없진 않지만,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을 가진 중국은 장기전에선 미국보다 유리할 수 있다. 넷째, 공군력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다섯째, 미사일 경쟁에서도 중국은 2030년까지 1,000기 핵탄두 보유를 목표로 빠르게 내닫고 있으며, 탄도·크루즈·하이퍼소닉 등 다양한 미사일을 비축해 가고 있다. 여섯째, 우주 산업에서도 중국은 놀라운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2023년에만 67회로 세계 최다의 우주 발사를 실행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육군은 세계 최강의 지상 병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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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중국인민해방군 창설 90주년 기념식./Defense Intelligence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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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은 이미 최강의 헤비급으로 성장해 있음에도 미국 정부는 최강국의 안일함에 빠져서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존스는 국방부는 방산 시스템의 고질적 병폐와 불합리를 일소해야 하고, 의회는 주요 군수품 확충을 위한 다년간의 예산을 편성하고, 펜타곤은 전문 인력의 훈련과 재교육을 위해 방위산업체에 지원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이 이미 위축된 조선산업을 시급히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를 향한 존스의 경종은 대한민국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핵무장에 성공한 전체주의 국가의 군사적 위협에 직접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지난 한 세대 대한민국은 감상적 민족주의와 투항적 평화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가 핵무장에 혈안이 된 북한 정권에 거액의 뒷돈을 질러주고는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을까?

김정은의 “반통일 2국가론”은 북한이 러시아, 중국, 이란과 더불어 이룬 “악의 동조”에 기초하고 있다. “악의 동조”를 믿기에 김정은은 민족의 통일 대신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점령·평정·수복까지 말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 노선을 맹종하는 정치 세력이 준동하고 있는데, 한미동맹만 믿고 안보 위기를 망각해 버린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과연 무사하다 할 수 있을까? <계속>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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