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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금박 입힌 옷, 화려하지만…절제로 아로새긴 금빛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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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세기에 조선시대 빈들이 착용했던 자줏빛 원삼. 소매와 도련 자락을 쭉 가로지르는 통수스란으로 금박을 장식했다. 이화여대 담인복식미술관 소장. 신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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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박(金箔)은 아주 얇게 편 금을 뜻하는 말이지만, 전통 공예에서는 금박으로 옷이나 물건에 무늬를 얹는 기법까지 아울러 가리킨다. 이화여자대학교 담인복식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금상첨화 금박’(내년 6월30일까지)은 국가무형유산의 하나인 금박과 금박으로 장식한 조선시대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다. 의복을 금으로 장식하는 방법으로는 붓에 금가루 섞은 풀을 물감처럼 묻혀서 그리는 금니(金泥)나, 풀로 무늬를 찍은 뒤 금박 대신 금가루를 뿌리는 산금(散金) 같은 방법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금박을 즐겨 장식했다. 크고 널찍한 면이 아닌 세밀한 선이나 복잡한 무늬까지 금박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전통 금박 기법을 현대까지 보전해내는 데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문양을 조각한 나무판에 접착제를 발라 옷감에 찍는다. 접착제가 묻은 옷감 위에 금박을 붙이고 말린 뒤, 무늬만 남기고 여분의 금박은 세심하게 떼어내 완성한다. 금박을 얹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지만, 문양판을 만들 판재를 말리고 다듬기에만 1년이 걸린다. 금박을 찍어낸 뒤에도 아교가 완전히 건조되기까지는 다시 1년이 걸리니, 금박은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충분한 시간과 계획이 필요한 까다로운 장식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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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제119호 금박장 김기호 장인의 가문에서 쓰던 금박 도구. 신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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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는 국가무형유산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인 김기호와 선대 김덕환 장인, 전통 복식 연구자 1세대로 꼽히는 고 유희경 이화여대 교수가 사용한 금박 도구와 재료를 통해 금박 작업 과정을 설명한다. 끌과 조각칼, 솜 깡통, 문양판 등 손때 묻은 물건들에서는 금박 기술을 이어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신분에 따라 장식 무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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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혼례 때 사용한 검은 면사와 1837년 덕온 공주 가례의 면사를 만들 때 사용한 모본. 면사본은 복제품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품. 신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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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금으로 장식한다는 것은 지위와 권력의 표현이기도 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문양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과시적이지만, 오늘날 전하는 유물들은 그 과시에도 때와 목적을 가리는 법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궁중에서도 금박으로 장식한 옷은 일상복이 아니라 입는 이의 신분이나 참석하는 자리의 성격에 맞추어 입는 의례복이었다. 자줏빛 원삼의 소매와 도련 자락에 금박을 가로지른 화려한 통수스란 장식도 그 안의 무늬는 신분에 따라 엄격히 쓰임이 나뉘었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과 봉황 무늬는 왕과 왕비의 옷에만 넣을 수 있었고, 그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들은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글자나 꽃무늬를 곁들인 수복화문을 장식했다. 궁중 장인들은 문양을 고르고 배치하는 도안 단계부터 예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했다.



민간에서도 금박을 장식한 옷은 특별한 날에 입었다. 돌과 설날에 입는 어린이 옷, 혼례복 등에 쓰인 금박 문양들에는 옛사람들의 현세적인 바람이 담겨 있다.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동자, 풍요와 장수를 상징하는 모란, 복숭아, 수복강녕(壽福康寧) 글자 등이다. 특히 전시에 나온 19세기의 비단 댕기는 대개 도투락댕기, 앞줄댕기 등 혼례에서 신부의 머리를 장식하던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한가운데에 동자 한쌍이 새겨진 댕기는 그 노골적인 소망 표출에 웃음을 자아낸다. 공손히 두손을 모으고 방긋 웃는 동자 무늬의 귀여움은 사실은 혼인하는 순간부터 부부에게 몰아치기 시작하는 다남자(多男子, 아들을 많이 얻음)의 압박이었을까. 신부가 온몸에 둘러쓰던 새까만 면사포도 요즈음 전통 혼례와는 사뭇 다른 옛날 잔치 풍경을 새롭게 그려보게 한다.



화려하게 차려입는다는 뜻의 성장(盛裝)이라는 말은 요즈음 잘 쓰이지 않는다. 그만큼 요즈음은 값진 옷을 차려입고 치장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옛 유물 속 금박은 옛사람들의 질서를 가만히 비추어 보여준다. 화려한 것을 마냥 화려하지 않게 쓰고, 힘과 지위를 나타내는 것에도 절제가 따르던 점잖음의 미덕. 그것을 하필 더없이 화려하고 풍성하게 베풀어진 금빛 장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금박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 장인은 한 인터뷰에서 ‘금박은 꿈’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금박을 새기는 일은 소망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꿈이 이루어지길 꿈꾸는 마음. 그 동어반복 같은 마음을 그리다 보면, 전시 제목인 ‘금상첨화’라는 말에 마음이 가닿는다.





국가 기밀처럼 다뤘던 가금 가공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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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댕기. 비단에 금박으로 꽃, 동자, 수복(壽福) 글자 무늬를 장식했다. 신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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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의 재미있는 점은 전통 금박과 함께 오늘날 더 흔히 쓰이는 전사인쇄 금박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의 대체재로 여겨지던 것도 그 나름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여 독자적인 수요가 확보되면, 다시 그것의 대체재가 나타나 수요와 공급을 넓혀가는 공예의 특징은 금박의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금박은 옷감에 금실을 섞어 짜는 직금(織金)보다 옷에 금색 무늬를 더 쉽게 넣는 방법이었지만, 금박 안에서도 끊임없이 더 효율적인 대체재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금박 재료로 진짜 금만이 아니라 금빛이 나는 가공물인 가금(假金)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그 예다. 옛날 동아시아에선 이 가금 재료와 가공술을 국가 기밀처럼 다루었는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이미 자황이라는 가금을 활용할 만큼 금박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었다. 접착제 역시 현대에 들어와서는 아교보다 쓰기 편한 오프셋 인쇄용 잉크, 옻칠 등 새로운 소재의 실험이 계속 이루어졌다. 전통 금박과 전사인쇄 금박을 단순히 진짜와 가짜, 혹은 옛날식과 현대식으로 쉽게 가를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열전사 금박이 처음 나왔던 1980년대에는 전통 금박보다 전사 금박의 값이 더 비쌌다는 일화는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금박 기술이 전통으로서 인정되어 보호를 받기 전까지, 옛것이 새것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압축적으로 체감하게 해주는 일화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인간은 신기술이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약해지는가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로봇의 작동이 인간의 수고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인간은 천천히 선별적으로 돕되 인공지능의 발전엔 경쟁적으로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지금은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기억될까.





문화유산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유산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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