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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이스라엘 전쟁 1년, 美 대선까지 흔드는 네타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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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헤즈볼라·이란 모두 공격

美 압박도 안먹혀 중동전략 타격

대선 표심 좌우할 주요 변수로

조선일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전쟁을 시작한 지 오늘로 1년이 된다. 전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서 시작됐던 전쟁은 중동 전체로 확산될 조짐이다. 왼쪽 사진은 지난 2023년 11월 이스라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인 가자지구. 오른쪽은 지난 5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시위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피묻은 얼굴 그림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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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7일로 1주년을 맞았다. 미국이 중재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수교를 논의하면서 한때 평화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중동은 한 해 사이 불타는 전장(戰場)으로 변했다. 하마스 공격으로 민간인 800여 명을 포함해 총 1200여 명이 사망하고 250여 명이 인질로 끌려간 지난해 10월 7일 밤 바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은 1년에 걸쳐 가자지구를 초토화한 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자지구에선 민간인을 포함해 4만2000여 명이 사망했고 전체 거주자의 86%인 190만명이 피란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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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휴전 요청에도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마스 편을 들어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해 온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전쟁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최근 레바논에 지상군을 투입해 전면전에 나설 태세다. 하마스·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 등 자칭 ‘저항의 축’을 지원해 온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과도 전쟁 위험이 커지고 있다.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전쟁은 이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문제가 아닌, 이란 대 이스라엘 사이의 지역 패권 전쟁으로 비화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세력의 전쟁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뒤흔들고 세계사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중동의 전쟁, 나아가 미국과 세계 정세를 뒤흔들면서 중동의 구도를 완전히 재편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는 5일 공개한 동영상 메시지에서 “아직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전쟁 흐름과 균형은 분명히 바뀌었고 우리의 무기는 여전히 (더 많은 군사 행동을 위해) 뻗어 있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세 차례 총리로 재직하며 미국 대통령 네 명을 상대한 네타냐후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에게 촉구하는 (휴전 권고 등)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의 폭주와 이에 대처하는 바이든의 소극성이 박빙인 미 대선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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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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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전 전쟁 발발 직전까지만 해도 네타냐후는 사법 무력화 시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직면해 강한 사퇴 압박을 받고 있었다. 부유한 사업가에게 값비싼 뇌물을 받는 등 부패 혐의로 형사 고발돼 감옥에 갈 위기까지 봉착했던 네타냐후의 입지는 1년 사이 완전히 뒤집혔다. FT는 “전쟁이 지속되고 총리에 있는 동안 네타냐후는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의 동맹국 미국을 상대한 경험이 많은 노련한 네타냐후는, 인지력 저하 논란으로 재선까지 포기한 바이든의 조언을 무시하면서 미 정치권까지 쥐락펴락하고 있다. 전직 이스라엘 외교관 알론 핑카스는 FT에 “네타냐후는 미국 정치인 대부분보다 ‘워싱턴 게임(미 정가가 돌아가는 판세)’을 잘 안다. 네타냐후는 (바이든 정부에) 지금 ‘오물’을 뿌려대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가 미국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위한 가자지구 협상, 레바논 헤즈볼라와 휴전 등을 추진하려는 미국의 뜻을 무시해 바이든과 민주당 정권을 무력해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판’이 이처럼 변화한 데는 끊임없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면서도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15년 이상 총리를 지내 온 네타냐후의 비상한 정치력과 생존술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드로윌슨센터의 조 마카롱 글로벌펠로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네타냐후의 정책은 중동을 끊임없는 안보 경쟁에 몰아넣고, 미국을 점점 더 지역 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중동의 정세가 점점 네타냐후의 ‘위험한 기획’에 따라 흘러가면서 많은 것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상황이란 것이다.

이스라엘 공격으로 지난 한 해 사이 지도부가 대거 제거된 하마스·헤즈볼라와 휴전할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지난 7월 이란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테헤란을 찾았다가 이스라엘에 암살당했고, 헤즈볼라의 오랜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또한 지난달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휴전을 원한 하마스 군사 부대 알카삼 여단의 지도자 모하메드 신와르 역시 점점 더 휴전에 회의적으로 바뀌어 오히려 확전을 원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내세워 바이든의 어떠한 회유와 압박도 뭉개고 민간인 희생을 무릅쓴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국가적·초당적 지지를 보여 온 미 정부를 향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며 네타냐후의 폭주는 미국 대선의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됐다. 바이든은 지난달에도 “네타냐후가 인질 협상 타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등 답답함을 숨기지 않아 왔지만, 통제되지 않는 네타냐후를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FT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중동 분쟁의 수렁에서 미국을 구하겠다고 약속하며 취임한 바이든은 중동 전역이 불타고 (확전을 우려해) 미군 4만명과 항공모함 두 척이 중동에 주둔하는 상태에서 퇴임할 위기에 처했다. (이런 바이든과 민주당에 대한 여론 악화로) 중동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를 위한 문을 열어줄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는 심지어 최근 연설에서 “이란 국민이 자유를 되찾는 순간이 빨리 올 것”이라며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들어선 이란의 신정(神政) 일치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레짐 체인지(체제 전복)’까지 시사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궤멸 직전에,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치를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결국 이 전쟁의 운명과 중동의 미래는 네타냐후의 손에 달렸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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