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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세금 더 낼 이유를 알기에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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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전경. 런던/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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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 자유기고가·영국 거주



“사립학교 등록금에 세금 20%를 더 징구해서 세 수입을 늘린다니 신박한 아이디어긴 한데, 내 주머니에서 더 돈이 나갈 거라 생각하니 씁쓸하구먼.”



아침 신문에서 내년 초부터 사립학교 등록금에 전에 없던 세금을 부가하겠다는 영국 정부의 발표를 보고 난 남편의 반응이다. 최근 영국은 14년 만에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는 전 정부의 인기 영합 퍼주기식 정책 덕분에 나랏빚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증세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세금으로 조성한 기금을 국가 기간산업 투자에 쓰겠다는 공약이다.



정부는 세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다수 국민의 저항을 받을 만한 소비세와 유류세 인상 대신, 오일 수급 파동에 막대한 이익을 거둔 에너지 관련 기업에 세금을 더 물리고, 내년부터 사립학교 등록금에 전에 없던 세금 20%를 추가적으로 징수해서 이 기금을 일반 학교 시설 확충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것이다.



월급쟁이인데도 우리가 딸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상류층 문화에 젖어들기 위함도 아니고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딸이 사립학교의 맞춤식 교육서비스에 따라 소규모 교실에서 안정감 있게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딸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서 즐겁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비싼 등록금을 기꺼이 감당하며 키우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사립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학교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있다. 그동안 자선 산업군으로 분류되어 학부모가 내는 등록금에 부과된 세금의 80%를 면제받았는데, 이제는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 단톡방에는 등록금 세금 부과에 반대하는 청원 사이트 링크가 올라왔다. 학부모들이 세금 부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자는 메시지 아래에 엄지손가락이 여러개 따라붙었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공립 초등학교의 보조교사로 근무했다. 주 업무는 일반 학급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을 보조하는 일이었는데, 각자 필요로하는 요구가 달라 여러모로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행동장애가 있어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아이, 남들과 이해하는 방법이 달라 특수교육지도를 해야 하는 아이,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 교육이 추가로 필요한 아이 등 정말 다양했다. 학교 주변이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라 학교는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 중요한 생명줄이었다. 아침 무료 베이글로 하루를 시작하고, 정부 보조금으로 주어지는 학교 무료 점심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비율이 제법 높았다. 가정의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약물 중독이나 범죄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어, 등교한 아이들에게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경찰이나 지역아동센터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늘어가는데 학교 법인은 지출을 줄여 예산안에 맞추느라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상황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회의 때마다 빈 교실 소등을 당부하고, 낭비되는 종이가 없는지 챙겼다. 오르는 물가를 급여가 따라가지 못하고, 주어지는 업무는 점점 가중되니 교사들의 퇴사가 줄을 이었다. 현재 교사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현대 사회는 소득 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영국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다.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사회 시스템이 보완해야 할 간극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영국은 이미 국민이 내는 세금 비율이 높은 나라다. 직접 살다 보면 그냥 평범하게 먹고 사는데도 제법 많은 돈이 든다. 세금을 더 내라는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를 통해 추가 세금 징수가 합당하다고 합의되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근무해보니, 영국 공립학교의 커리큘럼은 잘 짜여 있다. 다만 재정 부족으로 그 시스템이 잘 운영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번 결정으로 더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이론적으로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내 주머니에서 더 돈을 지불하려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천년만년 학교 다니는 것은 아니잖아.” 부부는 무엇이든 희망이 되는 말들을 나눠 본다. 남편과 나는 또 열심히 돈 벌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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