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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단독] 정부, 체코 원전에 “장기·거액·저리 대출” 제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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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체코 두코바니의 원전 단지의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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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두코바니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전 정부가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한국수출입은행(수은)을 통해 장기·거액·저리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체코 정부 쪽에 제안한 사실이 확인됐다. 앞서 입찰 과정에서 국책 금융기관이 발행한 ‘대출지원 의향서’를 보낸 사실에 대해 정부는 “관례적으로 보낸 비구속적 성격의 의향서”라고 그 의미를 축소했으나, “적극적으로 금융지원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8일 한겨레가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의 4·5·6월 ‘체코 출장 결과보고서’ 3건을 보면, 우리 산업부는 올 3월 말부터 무보·수은 등과 함께 체코 재무부 차관, 산업부 실장 등을 만나 “무보·수은의 공적수출신용기관(ECA)금융제도”를 설명하며 “금융지원 의사 표명”을 했다. 무보·수은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게 써준 ‘대출지원 의향서’도 제출했다. 이에 따라 체코 정부는 ‘재원조달 계획’을 금년말까지 검토하기로 했는데, “국채발행, 공적수출신용기관 금융 등 종합적으로 검토 예정”이라 밝혔다. 4월 말에도 산업부 쪽은 체코 산업부 장관·재무부 장관을 만나 “공사·수은 금융지원 제도”를 설명했는데, 이때 무보는 체코 쪽에 “장기·거액·저리 자금조달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이미 ‘대출지원 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사실도 주요하게 언급됐다.



이 같은 ‘적극적 금융지원’의 제안 배경에는 체코의 불안정한 재정 상황이 있다.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반면 공기·비용 초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규 원전 건설에서 자금조달은 핵심 문제로 꼽힌다. 체코 정부가 원전 2기 건설비로 예상한 150억 유로는 올해 체코 국가 예산의 17.3%에 달하며, 국방과 교통, 보건 예산을 합친 금액에 육박한다. 체코의 애초 신규 원전 4기를 지으려 했지만, 1기에 대해서만 유럽위원회(EC)로부터 정부가 지원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을 뿐, 나머지 3기에 대한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앞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7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금융지원 의향서’ 전달이 “대출을 약속한 게 아니”라면서도, “(두코바니 6호기 등) 2호기부터는 양국 조건이 맞으면 시장 이자율에 따라 (대출을) 지원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대출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결국 체코 쪽이 필요하면 대출을 해 주겠다는 의미다. 만약 수출국이 “장기·거액·저리로 자금조달”까지 해줄 경우, 원전 수출의 수익성은 기대보다 크게 떨어질 우려가 있다.



한겨레

한국무역보험공사가 4월 체코 출장 이후 작성한 출장 결과보고서 갈무리. 해당 문서엔 우리 정부가 체코에 원전 건설에 대한 장기·거액·저리 대출 지원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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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가 “한수원의 요청으로” 지난 6월 체코 산업부-원자력기구(NEA)가 주최한 ‘원전금융 워크숍’ 참가한 결과를 담은 출장보고서에도 이런 정황이 잘 드러난다. 당시 체코 산업부 차관은 모두발언으로 “신규 원전 건설시 금융조달 등 어려움 존재”한다 밝혔고, 유럽위원회 쪽 참석자도 “유럽투자은행(EIB)은 원전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신규 원전이 아닌 기존 원전의 설비개선과 수명연장 등에 대해서는 자금을 지원했다”며 원전 건설에 대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을 발표했다.



또 우리 정부는 체코 쪽과의 회의에서 “반도체·배터리·수소 등 체코측 주요 관심 산업에 대한 투자유치 및 산학협력 등 양국간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원전 수주를 조건으로 체코에 ‘추가 선물’을 제안한 것으로 읽힌다. 실제 이 제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22일 체코 순방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과 동행에 체코 기업인들과 사업 협력 등을 약속한 결과로 이어졌다.



김한규 의원은 “‘대출 약속은 없었다’던 산업부 장관이 뒤로는 체코에 거액의 대출을 약속한 건 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말”이라며 “한국이 낮은 입찰가를 제안하고도 장기·거액·저리 대출까지 해 줄 경우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산업부와 무보는 대출 제안 여부와 그 배경을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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