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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광화문에서/하정민]오바마-바이든-해리스의 ‘셰일가스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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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하정민 국제부 차장


11월 5일 미국 대선의 승패는 주요 경합주 중 가장 많은 선거인단(19명)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이곳은 미 50개 주 중 천연가스(셰일가스 포함) 생산 2위, 석탄 생산 3위인 화석에너지의 메카다. FTI 컨설팅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주(州) 경제가 가스 산업에서 얻는 이익만 400억 달러(약 54조 원)다.

민주당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992년부터 2012년 대선까지 내리 6번을 모두 이겼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에게 0.7%포인트 차로 졌다. 4년 후엔 이곳에서 태어난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고향 프리미엄’을 앞세워 1.2%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현재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트럼프 공화당 후보 또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때 민주당 텃밭이던 펜실베이니아주가 경합주로 바뀐 것은 물, 모래, 화학약품 등을 섞은 액체를 고압으로 분사해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수압파쇄법, 즉 프래킹(fracking)을 둘러싼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내수를 부양하고 중동산 원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 셰일가스 업계를 전폭 지원했다. ‘셰일 혁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곳곳에서 프래킹 붐이 일었다.

그러나 프래킹 과정에서 뒤따르는 지하수 및 대기 오염, 지진 유발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편두통, 비강염, 피로, 천식, 유산 등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도 속속 발표됐다.

친(親)환경을 표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연방정부가 보유한 토지에서는 프래킹 등 모든 신규 시추를 금한다”고 했다. 미국의 에너지 시추는 대부분 민간 소유 땅에서 이뤄진다. 에너지업계와 환경단체의 반발을 동시에 무마하려는 나름의 선택이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해리스 후보는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프래킹을 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8월 29일 CNN 인터뷰에선 “프래킹을 금하지 않고도 청정에너지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 내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프래킹을 규제하지 않고 어떻게 청정에너지를 실천할 건지, 달라지지 않은 본인의 가치가 뭔지 모호하다. 상당수 유권자가 “발언의 진정성을 못 믿겠다. 전형적인 말 바꾸기”라고 비판한다.

FTI 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프래킹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펜실베이니아 주민은 12만1000명. 이들의 연봉은 다른 직군보다 훨씬 높은 평균 9만7000달러(약 1억3100만 원)다. 프래킹을 허가한 토지 소유주가 받은 돈은 60억 달러, 세수(稅收) 또한 32억 달러에 이른다. 싫든 좋든 프래킹을 금하면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두 후보 중 누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이길지 모른다. 다만 ‘재집권 시 에너지 규제 철폐’를 외치는 트럼프 후보에게 당당히 맞서려면 해리스 후보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고 본다. “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해 보니 많은 유권자의 생계가 걸린 프래킹을 무작정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꾼 건 ‘말 바꾸기’가 아니라 ‘민생 챙기기’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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