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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김숨의 위대한 이웃]가장 큰 기적 ‘1% 바뀜’과 양지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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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제자리요…제자리…괜찮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내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 해요, 기다려줘야 해요.”

그래서 그녀는 기다린다.

애정을 갖고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을 눈빛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A에게 심어주며 기다린다. 기타를 치며 기다린다. 어느 순간 A가 기타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스스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장애연주자의 악기 지도자’ 양지연씨(1973년). 작년 초, 그녀에게 고민이 생겼다. “자폐장애가 있는 연주자에게 클래식기타를 가르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가야 하나?” 환경과 시간, 만나는 사람의 바뀜은 ‘내가 바뀔 수 있는(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제주도와 경기도 용인(집)을 오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키로 결정하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장애(발달장애, 자폐장애)가 있는 연주자들에게 피아노와 클래식기타를 가르치며, 뚜띠앙상블(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연주단)의 지도자이자 단원으로 활약 중이다.

장애가 있지만 프로연주자인 이들을 지도하며, 자신의 자녀가 왜 과잉행동을 하는지를 정작 부모가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과잉행동은 ‘불안’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녀는 그렇다는 걸 부모에게 이해시키고, 자녀를 다뤄나가는 방식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네”라는 대답을 잘한다. “아니요”라는 표현을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것인데, ‘네’를 그냥 “네”로 받아들인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떤 행동 패턴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녀가 악기를 가르치는 이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며, 부모에게 자식의 행동을 이해시키는 상담자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심리 공부를 한 덕분이다.(그녀는 상담소 집단프로그램 수업을 시작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상담 공부를 심화하고,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피아노와 클래식기타 선생님으로 살아가던 그녀가 심리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그녀 자신을 위해서였다. 두 아들이 자라면서 소통이 힘들어졌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소통, 관계가 함께 힘들어졌다. 심리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자기 분석을 하게 되면서,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아이들과 그리고 남편과 소통이 제대로 안 됐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 안의 의식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발견하고,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꺼내놓으면서’ 아이들과 남편과 단절됐던 소통이 다시 시작됐다.

“가족은 유기체예요.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가 아프게 돼 있어요. 아이가 아프다는 건, 부모 중 한 명이 아프다는 것이에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에요. 아이가 바뀌기를 바라기 전에 부모인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해요. 남편이, 아내가 바뀌기 전에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해요.” 그런데 ‘바뀌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잘 안 변해요. 기질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녀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지로 기질을 개선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교육으로는 안 된다. 그런데 바뀌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고, 그 의지를 놓지 않으면, 어느 날 1%가 바뀌어 있다.

“1%의 바뀜은 엄청난 노력과 인내에 의해서 얻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1%는 99%보다 크다.

“1%는 내 인생을 바꾸고, 내 가족의 인생을 바꾸고, 많은 것들을 바꿔요.” 그러므로 나 자신이, 그리고 누군가가 1% 바뀌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선생님이 기다릴게.” 몇시간째 악기를 외면 중인 A를 기다리는 그녀. 머지않은 날 장애인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회를 올리는 게 소망이다. “내가 8년 동안 해온 심리 공부와 상담은 나누기 위한 것이에요.” 그녀가 기꺼이 심리상담을 ‘무상으로’ 자신이 악기를 지도하는 연주자들의 부모들과 이웃들과 친구들과 나누는 이유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장애는 “타인들과의 관계든, 나 자신이든, 일이든,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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