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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문해력도 모르는 닭대가리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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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78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의실을 묘사하라 했더니, 학생 최다희씨는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구옥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낡은 건물’ 정도면 됐을 텐데, 이십대 젊은이가 ‘구옥’이라는 희귀한 말을 쓰다니(“‘구석’을 잘못 쓴 건가, 아니면 ‘9억’을?”이라 하는 친구도 있겠지만). 교과서에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이 낱말을 어떻게 쓰게 된 걸까? 책을 읽다가, 아니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에 새겨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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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면 늘 등장하는 두가지 주제. 하나는 외국어가 남용되고 신조어가 넘쳐나 소통이 어렵다는 것. 총리가 ‘외국어 새말 대체어 사업’을 추진한단다. 국가가 말과 글을 잡도리하겠다는 생각은 고쳐지지 않는다(하기는 할까?). 다른 하나가 ‘문해력 저하’다. 올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나섰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인식 조사를 했는데, 과거에 비해 학생들 문해력이 더 엉망이 되었다는 거다.



문해력의 핵심은 비판 의식이고, 비판 의식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능력이다. 사회의 지적 역량의 산물이다. 한글날 하루 떠든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의 말이 백번 옳은 말씀이라 치자. 어휘력을 문해력의 동의어로 보는 것도 좋다고 치자. 수십년을 혀가 닳도록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외쳐왔으면, 뭘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학교 교육을 어떻게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한해 한권도 읽지 않는 성인들을 위해 성인 1인당 1년에 10권의 책을 무상 공급하겠다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나? 작은 도서관을 늘리고 작은 책방을 살리고, 학교를 경쟁의 전쟁터가 아닌 배움의 광장으로, 아니 사회를 공생의 공동체로 만들겠다는 말 정도는 가볍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닭대가리가 아니라면 그 뻔한 걸 왜 말하지 않는가?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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