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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윤 대통령의 격노는 지금, 여기에 필요하다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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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9일(현지시각)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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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범 | 논설위원



나라가 김건희 블랙홀에 빠졌다. 자고 나면 추가되는 김 여사 관련 폭로·의혹에 여당 의원들은 “여론이 하루하루 달라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대통령 배우자가 국정 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현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여러가지를 목도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명태균씨가 ‘내가 구속되면 대통령 하야·탄핵인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언론에 대놓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야당·언론 상대로 일삼던 고소·고발은커녕 그 흔한 “명태균은 허풍쟁이”라는 말도 않고 있다. 임기 절반 남은 대통령을 정치 브로커가 조롱, 협박하는데도 어쩌질 못하는 지경이 됐다. 야당에서 “김 여사는 V2가 아니라 V0”(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라거나 “김건희 대통령, 윤석열 영부남”(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상황이다.



둘째, 대통령실의 실상을 엿보게 됐다. 윤 대통령이 2021년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하려고 이준석 당시 대표를 만날 때 명태균씨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명씨 주장으로는, 최소한 올해 총선 때까지 김 여사와 명씨는 소통하며 공천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아직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안 나왔다”고 했다. 대통령실 참모(김대남 전 선임행정관)가 윤 대통령을 “꼴통”이라고 하는 육성도 공개됐다. 대통령 부부에 대한 그의 신랄한 평가와는 별개로,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나 충성심은 없이 후속 자리를 바라며 버티고 있다는 참담한 단면이 드러났다.



셋째, 국가 시스템이 망가졌다. 국민권익위원회, 검찰, 감사원이 ‘김건희 보위 기구’로 전락했다.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상 제재 규정이 없다”며 종결 처리했고, 검찰도 ‘선물은 우호적 관계 유지 또는 접견 기회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공직자들 사이에는 “나도 배우자 통해 선물 받으면 되겠는데, 처벌 피할 만큼 힘세지 않은 게 문제”라는 자조가 나온다. 감사원은 대통령 관저 이전이 ‘편법·불법 투성이’였다면서도, 의혹의 핵심인 김 여사 개입 여부와 특혜 시비는 밝혀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사안에는 두 눈 부릅뜨고 검찰에 수사의뢰해온 감사원이 김 여사 앞에서는 한없이 무능해졌다.



넷째, 집권 세력의 ‘문제 해결 능력 없음’이 드러났다. 김 여사가 명품 가방 받는 장면을 지난해 11월 온 국민이 영상으로 지켜본 지 1년이 되어가는데 김 여사 성역은 더 굳건해졌고, 용산은 청와대 뺨치는 구중궁궐이 됐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무엇을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싸움만 벌일 뿐, 어느 한쪽도 정치력을 발휘해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은 10·16 재보궐선거 뒤에야 독대하겠다고 하는데, 마주 앉기도 이리 힘든데 ‘유능한 당정’ 기대 같은 건 사치다.



김 여사 문제는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지난 총선 전 민주당이 언급한 김 여사 관련 의혹은 △명품 가방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양평-서울 고속도로 3가지였는데, 지난 9월 발의했던 김건희 특검법안에는 △총선 공천 개입 △장차관 인사 개입 △권익위 조사 외압 △임성근 구명 로비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의혹까지 더해진 8가지가 수사 대상으로 적시됐다. 다음번 특검법안에는 뭐가 또 추가될지 모른다.



‘이게 나라냐’는, 8년 전 겨울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탄식과 분노가 번지고 있다. 이 사태를 해결 못하면 윤석열-한동훈 공멸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 해법도 갈수록 외길이다. 김 여사가 철저하게 수사받고 재판받는 것만이 답이라고, 보수언론도 지적한다.



윤 대통령은 명품 가방 사건 보도 석달 만인 지난 2월 한국방송(KBS) 대담에서 “정치 공작”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서울의소리와 최재영 목사에게만 화내지 말고, 김 여사가 국민 앞에 사과하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를 말한 한동훈 대표가 아니라 김 여사에게 격노했다면,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가 지금 수준까지 올랐을까. 윤 대통령은 자신을 협박하는 명태균씨에게 격노해야 한다. 그리고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말과 다르게 행동해온 김 여사에게, 그리고 이를 박절하게 제어하지 못한 자신에게 격노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격노는 도처에 뿌려져 희귀성도 무게감도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꼭 한번 절실한 격노가 있다면 지금, 여기에 쏟아야 한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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