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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바이든, 네타냐후에 또 당했다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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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월2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이날 양국 정상은 가자사태 휴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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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2010년 3월9일, 당시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미국의 안보 공약을 재강조했다.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점령지 정착촌 건설이 큰 갈등을 빚은 직후였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중단 발표를 기회로 보고 바이든의 방문으로 평화 협상을 촉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바이든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만찬 직전 이스라엘 내무부가 동예루살렘 점령지에 1600가구를 짓겠다며 정착촌 확대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만찬 테이블에 재를 뿌린 셈이다. 네타냐후는 발표 계획을 몰랐다고 잡아떼면서도 발표를 번복하지는 않았다.



바이든은 현지에서 비판 성명을 냈다. 하지만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바이든은 “과연 그답게 이 모든 소동에도 침착했다”고 회고록에 썼다. 힐러리는 정말 격노한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고 했다. 오바마는 힐러리에게 자신의 분노를 네타냐후에게 똑똑히 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네타냐후는 이 직후 강력한 유대계 로비 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총회에 참석하려고 미국을 방문했다. 힐러리는 오바마가 백악관에 온 네타냐후를 거의 1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드는 식으로 복수했다고 전했다.



2024년 9월27일, 바이든은 네타냐후에게 또 뒤통수를 맞았다.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공습으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살해된 것이다.



바이든은 나스랄라는 미국인들 살해에도 책임이 있다며 “정의로운 조처”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언론 보도 등을 보면 네타냐후에게 놀아난 점이 확연해진다. 나스랄라 사살 이틀 전인 25일 밤에 바이든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1일간의 휴전 촉구 공동성명을 부랴부랴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논의가 상당히 진척됐으니까 나온 성명이라고 전했다. 백악관 특사는 유엔과 레바논 관리들에게 이스라엘이 휴전 지지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고, 나스랄라도 중재인을 통해 지지했다는 것이다. 네타냐후도 이튿날 “이스라엘은 미국이 주도하는 계획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며 호응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네타냐후의 뉴욕 유엔총회 연설 2시간 뒤 베이루트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이스라엘은 며칠 전부터 계획을 짰지만 미국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헤즈볼라와의 휴전은 가자지구 하마스와의 휴전도 의미할 수 있었다. 임기 말에 난제를 해결해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었을 바이든으로서는 망연자실할 노릇이다. 재선의 꿈을 본의 아니게 접은 그가 노벨 평화상을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4년 전 이스라엘을 찾은 자신에게 ‘엿’을 먹인 네타냐후가 이번에는 미국에 와서 그랬다.



최강국 지도자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 미국 유대인들의 힘, 네타냐후의 지략 등이 배경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 책임은 바이든 자신의 무능, 판단 착오, 편견에 있다. 가자지구가 잿더미로 변할 때도 그는 민주주의(이스라엘)와 반민주주의(하마스) 세력의 싸움이 본질이라며 이념 타령을 했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곧 출간할 책에서 바이든이 네타냐후를 가리켜 “더럽게 나쁜 놈”이라고 욕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용당하며 도운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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