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시바 총리가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윤 대통령과 닮은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다. 윤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한·일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시키며 일본 정치권은 물론 일본 사회에서 큰 호감을 사고 있다. 외교가에선 “역대 어느 때보다 좋은 정상 간 조합”이란 말까지 나온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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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은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날 오후 첫 회담 테이블에 앉았다. 앞서 윤 대통령이 이시바 총리 취임 이튿날인 지난 2일 축하 통화를 한 지 8일 만에 상견례 자리를 갖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 박창건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전화통화 이후 빠른 정상회담까지 출발 분위기가 좋다”며 “앞으로 이시바 총리가 셔틀 외교로 조기 방한을 추진하고, 한국과 안정된 관계를 위해 제도화된 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두 정상은 애식가이자 애주가로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등 인간적으로 닮은 부분도 있다”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와 견줄 만큼 ‘케미’가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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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통일 독트린' 지향점도 같아"
전문가들은 특히 두 정상이 안보 협력 문제에서 상당 부분 이해가 일치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통령은 물론 이시바 총리 역시 꾸준히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 '버몬트함'이 지난달 23일 부산 남구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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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전 총리가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통해 틀을 세운 한·미·일 안보 협력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예비역 육군 준장)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역내 안정을 위해선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한발 더 나아간 협력의 구체화가 중요하다”며 “북핵 등 한·일 양국이 느끼는 위협의 실체가 비슷하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 실질적인 협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에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 역시 한·미·일 안보 협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풀이도 나온다. 권 회장은 “3국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처음으로 언급한 게 바로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라며 “일본 입장에서 보면 ‘8·15 통일 독트린’ 역시 지향점이 같은 것”이라고 짚었다.
정상회담에 앞서 이날 한·일 국방장관들은 화상회담을 통해 이같은 양국간 안보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NHK에 따르면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일·한, 일·미·한의 방위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나카타니 방위상은 이날 기자들에게 “내가 방위대신으로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이래 방위대신이 한국에 가서 회담한 적은 없었다”며 “조기에 한국을 방문해 회담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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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공유, 양국이 공조할 수도"
다만 이시바 총리가 제시했던 ‘미·일간 핵공유’ 구상과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아이디어에 윤 정부가 적극 동의하고 나서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미 일본 국내에서 “비현실적”이란 비판에 시달리면서 이시바 총리 측도 “장기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시바 총리의 이런 구상도 윤 정부의 코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바라본다. 특히 핵공유 구상과 관련,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국내에서도 미국과 핵공유 협정을 맺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며 “윤 정부가 현재는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 미국의 확장억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북핵 위협이 더 고조되면 핵공유와 관련해 일본과 공조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4일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현재의 전략 환경에서 일·한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는 것은 쌍방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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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판 나토 구상 역시 큰 틀에선 윤 정부의 숙제라는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냉전 시절 유럽이 미국을 잡아두기 위해 창설한 게 나토”라며 “아시아판 나토 역시 아시아에 미국의 관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장치인 만큼 한국도 집단안보 체제에 대해 숙고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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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문제, 논리적 설득 중요"
다음 달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안보적인 측면에서 한·일의 공조가 더 시급해질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의 비용 분담을 강조해온 만큼 양국 모두 같은 고민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곤 교수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을 체결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라며 “트럼프 1기 때는 한국(문재인 정부)과 일본(아베 신조 정부)이 관계 악화로 전혀 공동 대응을 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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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정권의 출범은 한·일간 뇌관인 과거사 문제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당장 이시바 전 총리는 지난 4일 첫 일본 국회 연설에서 “일·한간에는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기시다 전 총리와 윤 대통령이 쌓은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일·한 양국의 협력을 더욱 견고하고 폭넓은 것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창건 교수는 “‘정책통’으로 유명한 이시바 총리는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논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며 “한국 측이 과거사 문제나 한·일간 현안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자세가 왜 필요한지를 정교하게 잘 논리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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