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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공무원, 의사, 변호사, 은행원까지...동성부부들, 10년 만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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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성 부부 11쌍

'혼인평등 소송' 제기

10년 만의 법원 판단 주목

최근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와 같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성소수자들 이야기도 잇따라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들은 나아가 가족으로서 동등한 법·제도의 존중과 보호를 받는 삶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10일) 11쌍의 동성 부부가, 혼인 평등을 요청하는 소송에 나선다는 소식을 기자회견으로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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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하 / 동성 부부]

"부케 하시는 분이 좋아하셨어. 신부가 둘이어서."

3년 전 윤하씨 부모님에겐 며느리도 사위도 아닌, 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한은정 / 황윤하 어머니]

(영글이는) 새 딸이라고 부르죠. (윤하씨는?) 구(舊)딸.

결혼할 여자를 찾았단 딸의 말에 걱정이 앞섰지만,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큰 기쁨이 됐습니다.

[한은정 / 황윤하 어머니]

그전보다 우리 영글이는 더 딸 같고요. (두 사람이) 더 안정돼 보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더 동글동글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엄마 아빠는 두 사람의 웨딩플래너처럼 앞장 서서 예식장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한은정 / 황윤하 어머니]

주변의 축복을 받고 서로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그런 관계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 이런저런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움츠러들지 말자. 기쁘고 당당하게 가자.

하지만 미래를 떠올릴 때마다 불안감이 덮칩니다.

서로가 아플 때 법적인 보호자가 되어줄 수 없고, 함께 쌓아올린 삶의 결과물에 대해 상속권 등을 보장 받기 어렵습니다.

[황윤하 / 동성 부부]

제 배우자가 허리 디스크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급히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보호자가 될 수 없으니까 새벽 시간에 어머니한테 연락을 드려 가지고… (나중엔)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 텐데 그 이후의 일들이 걱정 되죠.

법과 제도의 보호 아래 가족을 꾸릴 권리를 요청하는 11쌍 동성 부부들이 함께 소송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모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불수리 처분을 받은 이들로, 각 구청을 상대로 가족관계등록부를 고쳐 달라며 '불복 소송'을 내는 겁니다.

동시에 각 법원에 이성 부부의 혼인만 허용하는 현행 민법의 위헌성을 따져 달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원고는 공무원부터 의사, 변호사, 은행원 등 우리 사회 곳곳 함께 해왔지만 때론 스스로를 숨겨야 했던 이웃들입니다.

11년차 동거 가족으로 살아온 김기환·박종렬씨는 오랜 기간 부모님을 설득해 최근 상견례까지 치렀습니다.

[박종렬 / 동성 부부]

저희 아버지가 항상 저희를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결혼 언제 하냐'고 하세요. 혼인이 가능하게 판결이 난다고 하면, 바로 식장부터 알아보려고 합니다.

기증받은 정자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김세연·김규진 부부도 딸의 미래를 위해 소송에 참가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세연 / 동성 부부]

저희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런 걱정과 두려움 없이 그저 건강하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처럼 뛰어 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세계 39개 나라에서 동성 부부 결혼이 법제화 됐습니다.

일본에선 지난 5년 사이 삿포로 등 4곳 지방재판소에서 동성 결혼 불인정의 위헌성을 확인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아이를 임신하거나 키우는 성소수자는 일본에서만 24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조숙현 변호사 / 혼인평등소송 대리인단장]

(20년 전)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 제도가 붕괴된다고 하는 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가족 내 평등이 실현됐습니다. 이 (혼인 평등) 소송은 우리 가족법에 남아있는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10년 전 영화감독 김조광수씨 부부가 같은 취지의 소송에 나섰지만 법원이 각하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법원은 결혼의 본질을 남녀간의 결합으로 해석해, 동성 간의 합의를 혼인의 합의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이 동성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등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판단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10년 전 국내 첫 '혼인 평등 소송'을 법률 대리했던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이번 소송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헌법이 만들어진 게 해방 직후인데, 그 때는 동성애 문제가 전혀 사회에 대두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이제는 헌법 36조 제1항에 대한) 해석을 좀 더 넓혀야 되겠고요. 10년 전에는 소송의 결과를 떠나서 사회에 (동성혼이란 화두를) 던지는 의미가 있었고요. 일종의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면 이제는 그것으론 부족하고, 좀 더 넓혀서 동성 부부들이 혼인으로 인정을 받는 그런 때가 꼭 지금 왔다고 봅니다.

취재 : 임지수

VJ : 허재훈 한재혁

영상편집 : 김영선

화면출처 : WAVVE 다큐 〈모든패밀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임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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