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법 왜곡죄’ 도입 이전에 국회가 해야 할 일[기고/김성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담론과 협상, 절충과 대안의 도출을 통해 소수의 의견이 반영된 합리적 다수의 의견이 법률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법치주의’가 사라질 위기다. 대표적으로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법 왜곡죄’는 국회 다수당의 생각이 바로 주권자인 국민의 생각이라는 왜곡된 논리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형사법 분야 전문가 집단과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생략된 채 진행 중인 국회의 입법 과정은 절차적으로 민주주의 근간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다.

‘법 왜곡죄’ 법안에서 법관 등 재판기관은 대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검사를 통제하면 법관은 저절로 왜곡 없는 정의로운 판단을 하게 된다는 논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수사기관만이 대상이라는 것인지, 그 배후도 의심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독일의 경우 1839년 뷔르템베르크 왕국 형법전에 처음으로 ‘법 왜곡’(Rechtsbeugung)이 등장했다. 여기서 ‘법 왜곡’이란 ‘부정의’(Ungerechtigkeit)와 같은 의미다. 나치와 옛 동독에 부역한 판사의 처벌 문제와 같은 특수한 경험이 반영된 독일 외에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는 몇몇 국가에서도 이 죄의 주체는 ‘판사, 중재판사 또는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공무원’이다. 독립적이고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법을 왜곡했을 때, 즉 부정의하게 어느 일방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판단하는 경우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준사법기관’이라는 검사의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지위를 인정하는 독일의 경우에는 판사와 동등하게 평가되는 것이 검사이므로 법률엔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적용 대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검사는 행정부의 일반 공무원과 동일한 지위를 가질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사를 법 왜곡죄의 주체로 내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법 왜곡죄는 ‘증거 해석·사실 인정·법률 적용을 왜곡’한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라는 형법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면 상징적인 정치 형법에 불과하거나, 구체적 사안에서 법 적용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졸속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인정, 증거 해석, 법률 적용은 형사사법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매 순간 해야 하는 일상의 모든 업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이 범죄 행위라는 것인지 전혀 특정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내사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수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고소, 고발, 진정이 가능해진다. 형사사법의 기능도 마비된다. 어느 시점이건 수사 진행이 중단되고, 담당 수사관을 교체해야 하고, 원점부터 새롭게 수사하는 절차가 일반화될 것이다. 형사사법 마비로 인한 국가적 피해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지금은 ‘검수완박’이란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발생한 새로운 피해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대책을 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 국민에게 부담이 되고 범죄인의 낙원을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분명히 국민의 목소리다. 법률을 만들고 고치는 일이 가벼워도 너무나 가벼운 작금의 정치를 걱정하는 주권자인 다수의 국민은 시급한 개혁의 대상을 바로 국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