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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삼성전자보다 더 처절한 반성문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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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반환점

축구로 치면 전반을 0:3으로 마친 격

삼성처럼 보수도 ‘능력은 있다’ 신화 깨져

정치는 개인 아닌 팀전인데 보수는 그걸 몰라

자기가 더 위대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끄는 중

더 진솔하고 처절한 대통령 반성문 보고 싶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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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3분기 어닝 쇼크 이후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발표했다. " (...)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습니다. (...) 무엇보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습니다.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입니다. (...)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습니다. (...)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하여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 "

한마디로 말하면 기술 경쟁력을 잃었다는 고백이다. 이제 삼성전자는 ‘도전자’라는 점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국가든 기업이든) 세상의 모든 조직은 ①변화를 이끌거나 ②변화를 뒤쫓거나 ③변화가 두렵거나 ④변화에 둔감하거나다. 한때 삼성전자는 변화를 이끌었으나 이젠 뒤쫓는 신세다.

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다. ①시장 지배력이 있는 사업에서 혁신을 게을리하는 경우 ②시장 지배력이 약한 사업에서 무리하게 욕심을 내는 경우다. 삼성전자는 ‘AI 시대’를 읽지 못하고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기술 경쟁력을 잃었고, TSMC가 지배하고 있는 파운드리에서 ‘2030년까지 TSMC를 넘겠다’는 무리한 계획으로 경쟁사를 자극한 전략적 오판이 겹쳤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삼성전자 위기로부터 배워야 한다.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으로 국회를 지배하고 있고, 대통령 지지율은 20% 붕괴 직전이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은 회복 불능 상태고,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확산 일로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폭로와 협박은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 건 ‘인지 부조화’에 빠졌다는 고백이다. 삼성처럼 위기를 인정해야 한다.

위기를 인정하더라도 진짜 문제는 원인을 둘러싼 갈등이다. (위기의 원인을) 한동훈 대표는 100% 윤석열 대통령 탓으로 생각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100% 한동훈 대표 탓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총선 패배 책임도 윤 대통령이 좀 더 크고, 현재 갈등도 대통령 책임이 좀 더 크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지만 윤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 책임이 더 크다 하더라도 한동훈 대표 책임도 작지 않다. 굳이 숫자로 얘기하면 30% 정도는 한동훈 대표 책임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삼성전자처럼 보수도 한때는 변화를 이끌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 보수는 변화를 이끌기는커녕 뒤쫓지도 못한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둔감하다. 그 결과 삼성전자가 기술 경쟁력을 잃은 것처럼 보수도 ‘능력은 있다’는 신화가 무너졌다. 이젠 도전자 포지션의 비주류로 전락했다. 보수는 꿈도 잃고, 길도 잃고, 힘도 잃었다. 두 다리 풀린 권투 선수처럼 리더십 붕괴와 지지 기반 축소의 이중 위기에 처했다.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나는 2018년 1월 1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 (...)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의 아우라도 사라진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 젊은이들에게 보수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존경할 인물이 없다” “부패했다” “촌스럽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능력도 없다”가 추가됐다. (...) 보수의 시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으로부터 패권의 지위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과 비슷할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순간에 몰락했다. (...) "

보수는 정치 싸움의 네 전선, 즉 혁신 대 기득권, 미래 대 과거, 새로움 대 낡음, 통합 대 분열에서 질 수밖에 없는 기득권·과거·낡음·분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류가 ‘혁신’하지 않으면 비주류의 ‘혁명’ 대상이 된다. 보수는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에 직면했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정치는 개인전이 아니라 팀전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불문율처럼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많더라도 팀워크가 무너지면 이길 수 없다. 지금 보수는 국민의힘보다 자기가 더 위대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 그게 위기의 핵심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용병은 단결하지 못하고, 권력을 탐내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존재다. 용병은 전쟁을 회피하며, 패배 또한 회피한다. 따라서 용병을 쓰는 군주는 평화 시에는 용병에게 약탈당하고, 전시에는 적에게 약탈당한다”고 썼다. 용병에 의존했던 피렌체의 참담함은 오늘날 한국 보수에게 던지는 경고다.

민주당은 용병에 의존하지 않는다. 옥쇄할망정 자기들이 키운 자기들의 전사로 싸운다. 2002년 이인제·정몽준, 2007년 고건·손학규, 2012년 안철수와 같은 용병의 유혹이 있었으나 최종 선택은 자기들이 키운 후보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반면 보수는 용병에 의존하는 습성 탓에 적과 싸우기도 전에 내부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아직도 그 습성을 못 버리고 있다.

한 달 후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반환점이다. 지난 2년 6개월을 축구에 비유하면 전반전을 0:3으로 마친 격이다. 후반전에 대반전이 없다면 뒤집기 어려운 점수 차다. 중요한 것(지지율·총선 승리·국정 기조·인사·태도·메시지)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오만과, 중요하지 않은 것(지나친 이념 공세·거친 당 장악 시도·무리한 정책 추진)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오기 탓이다. 오만과 오기는 오판 탓이다.

임기 반환점이 되는 다음 달이 반전의 마지막 기회다. 생각과 사람을 싹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반성’이다. 적어도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반성문보다 더 진솔하고 더 처절한 윤석열 대통령의 반성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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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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