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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앵커칼럼 오늘] 21세기 색동옷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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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분천헌연도입니다. 조선 초기 문신이자 문장가, 농암 이현보가 낙동강 지류 분천 언덕에 집 짓고 부모님께 바친 잔치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일흔 살 넘도록 부모 앞에서 때때옷 입고 춤을 춰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부친은 아흔여덟, 모친도 여든다섯까지 장수했습니다.

평균 수명 서른다섯이던 시대, 농암 역시 여든여덟 살 천수를 누렸지요. 타고났겠지만, 대 이은 효도 덕도 컸을 겁니다.

기대수명이 여든세 살에 이르는 초고속 고령화 시대에는 흉내 내기 힘든 '색동옷 효도' 입니다.

"내가 혼례를 올렸던 곳이 장례식장이 됐더라." 재작년 SNS에 올라온 부산 어느 8층 건물의 두 사진입니다.

2003년 문을 열어 성업하던 결혼식장이 부산 최대 장례식장 본점이 됐습니다.

결혼식보다 장례식 갈 일이 훨씬 많아진 겁니다.

인천에서는 어린이집이 요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유치원 버스에 탄 딸에게 손을 흔들던 어머니가, 이젠 딸의 전송을 받으며 '노치원' 버스를 탄다."

지난 10년 사이 유치원 2백 여든세 곳이 '노치원'이 됐다고 합니다.

노인을 매일 모셔 보살피고 저녁에 귀가시켜 드리는 '주간 보호(데이케어) 센터'를 그렇게 부릅니다.

심신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다채로운 즐길 거리와 끼니를 챙겨 드리고 병원에도 모셔다 드려 흡족해하신답니다.

비용도 하루 만 원대입니다. 자식 대신 나라가 해드리는 '색동옷 효도' 라고 할까요.

서울 폐교에 실버타운을 지을 수 있는 길도 열렸습니다.

수도권 노인 주택 수요에 숨구멍이 트일 거라는 기대를 모읍니다.

낙향해 노년을 유유자적 즐긴 농암을, 제자 퇴계는 늙은 신선, 노선(老仙)이라고 칭송했습니다.

농암의 행복한 만년 역시, 아버지 못지 않았던 아들의 효도 덕분이었습니다.

효심이 지극해도 노부모를 모시기가 쉽지 않은 간병 감옥, 노노(老老) 부양의 시대입니다.

그 어두운 그늘을 '노치원'처럼 구석구석 밝히는 공공 복지시설이 효자입니다.

노인 시설을 냉대하는 시선들도 거둬들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습니다.

10월 11일 앵커칼럼 오늘 '21세기 색동옷 효도'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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