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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별과 시도 아름답게 빛나기까지 시간을 들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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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이티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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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뿌리는 서서히 형성되는 것
뭐든 충분히 쌓이면 보이고 변화
‘나는 되어가는 존재’란 걸 믿고
여정 자체가 주는 보상 즐기길



마침내 가을이네요. 잘 지내시나요, 여러분. 조민진입니다. 이 계절이 오면 인용하려고 아껴둔 시가 있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첫머리입니다. 1941년에 쓴 시입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해였고, 25살이었지요.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했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담을 19편 중 한 편이었지만 제때 빛을 보진 못했습니다. 1948년에 나온 그의 유고 시집에 처음 실렸지요. 윤동주는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이유로 복역하다가 해방 직전 29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를 쓰면서 상상해봤을까요? 자신의 시가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으리란 걸 말입니다.





찰나의 포착도 기다림의 결실





아슬히 먼 별을 볼 때면 시간을 느낍니다. 지금 보는 별빛은 이미 저 별의 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우리가 보는 건 늘 별의 과거 모습입니다. 빛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안드로메다자리 베타별은 태양에서 75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현재 우리 눈에 도착하는 별빛의 광자들은 사실 75년 전에 그 별을 떠난 것들”이란 설명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읽었습니다. 빛은 1초에 약 30만 킬로미터를 갑니다. 지구 7바퀴에 이르는 거리라지요. 이런 빛이 제 속도로 1년 동안 지나는 거리가 1광년입니다. 인공지능(AI)에게 계산을 맡겨볼까요? 네, 75광년은 709조5750억 킬로미터쯤 된답니다. 천문학적 척도로는 지구와 가까운 이웃에 불과한 거리입니다. 그래도 퍼뜩 가늠되지 않습니다. 별빛은 그 먼 길을 수십년 동안 달려온 거지요. 마침내 우리가 보게 된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습니다. 안드로메다는 가을철 별자리입니다. 윤동주가 올려다본 가을밤 하늘에서도 자리를 지켰겠지요? 별빛도, 시도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이 걸렸다는 건 기다림이 있었다는 얘기지요. 모든 기다림에는 끈기가 필요하고요. 이번 글에선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나아가는 데 도움 되는 마음가짐을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무슨 일이든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20세기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뿌리는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보도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결정적 순간’을 재빨리 포착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그런 그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는 게 얼핏 모순적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욱 힘이 됩니다. 우연과 행운의 조합처럼 보이는 찰나의 결과물조차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었다는 얘기를 한 거니까요.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파리 생라자르역 뒤편’(1932년)은 널리 알려진 사진입니다. 한번쯤 보셨을 거예요. 사진에는 남자가 물웅덩이를 뛰어넘는 순간이 담겼습니다. 그림자가 수면에 비치고요, 마침 그 모습은 저 멀리 왼쪽 건물에 붙은 포스터 속 무용수의 동작과 대칭을 이룹니다. 이토록 절묘한 사진을 얻기까지 카르티에브레송은 한참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2022년 국내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이 작품을 직접 봤고, 그의 에세이집 ‘영혼의 시선’에서 앞서 소개해 드린 문장을 읽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종종 떠올립니다. 사진가는 우연히 포착한 장면을 얻기까지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을요. 조바심을 버리고 계속해서 할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다음으론 ‘나는 되어가는 존재’라고 믿는 겁니다.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임은 사실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 몸의 세포는 1년이면 거의 모두 새롭게 바뀝니다. 피부 표피세포의 수명은 대략 한달쯤 되고요. 그러니 엄밀히는 누구도 완성된 상태가 아닙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쓴 자서전 제목도 ‘비커밍’(Becoming, 되어가기)이지요? “끊임없이 되어가는 대신 됐다는 끝이 있다면 오히려 슬픈 일”이라고 미셸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음을 신뢰하는 게 중요합니다. ‘계단식 성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지루한 정체기가 지속되다 특정 시점에서 마침내 괄목하게 도약하는 겁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좌절감이 밀려올 때면 머릿속에 ‘계단’을 그려보곤 합니다. 정체와 성장이 반복될 뿐이니 꾸준히 가보자고 스스로 독려하면서 말입니다. 충분히 쌓이면 눈에 보이게 바뀝니다. 축적되면 변화됩니다.







시간 지나서야 이어지는 귀한 경험들





마지막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를 보상으로 여기는 겁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이면 이보다 더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생각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을 여행처럼 느끼게 되지요. 긴 시간 좀 힘들어도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되고요. 사실은 스티브 잡스한테 배운 자세입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에서 잡스가 가장 좋아했던 금언이 바로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The journey is the reward)라고 읽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모든 과정은 저마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 아닐지요.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더라도 과정은 늘 경험을 동반하기에 그렇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면 모든 경험은 인생의 자양분입니다. 지금 경험의 의미를 당장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잡스는 “오직 돌아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지요. 시간이 지나고서야 지난 경험들이 어떻게 이어져 여기까지 왔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경험은 언제나 도움이 됩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으로 시작해 밤하늘 별빛, 시간, 변화, 과정에 대한 말들을 나눴습니다. 별빛이 긴 세월을 건너 마침내 눈앞에서 반짝이듯이, 꿈이 있다면 어려워도 끈기 있게 도전해 보자는 응원을 주고받고 싶었습니다. 별 하나마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불러 보던 윤동주는 시 끝자락에서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이라고 상상을 적었습니다. 그의 시는 지금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을이 왔으니 겨울도 오겠지요. 그렇게 시간이 걸려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올 겁니다.



작가



신문·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작가나 강사로 불립니다. 꿈꾸며 노력하는 여러분께 말과 글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 유튜브(‘조민진의 웨이투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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