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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19세기 '식인 사자' 이빨에 박힌 털 보니…사람 DNA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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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890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많은 사람을 해친 것으로 알려진 '차보 식인 사자'(Tsavo Man-Eaters)의 두개골과 이빨. 부러진 충치 속에 있던 수천 개의 털 조각에서 사람과 기린, 얼룩말, 영양, 오릭스, 워터벅 등의 DNA가 확인됐다. 사진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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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아프리카 케냐에서 수십 명의 사람을 해친 것으로 알려진 '차보 식인 사자'(Tsavo Man-Eaters)의 충치 속 털에서 사람과 기린, 얼룩말 등의 DNA가 발견됐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리판 말리 교수팀은 12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박물관에 있는 차보 사자 이빨에 있던 털을 분석해 사람과 여러 동물의 DNA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1926년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돼 보관돼온 케냐 차보 사자 2마리의 유골 중 손상된 충치에 압축돼 있던 털에서 DNA를 분리한 뒤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들 사자는 식민지화 시대인 1898년 사살되기 전까지 케냐 차보강 인근 교량 건설 현장을 습격해 사람들을 잡아먹는 등 최소 28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기 없는 성체 사자였던 이들의 유골에는 1990년 초 먹은 음식의 흔적을 조사하던 중 충치 부분에 수천 개의 털 조각이 압축돼 쌓여 있었다. 이후 여러 연구자가 현미경 분석 등 방법으로 다양하게 조사했으나 사자가 잡아먹은 동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최근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고대 표본 DNA 추출·분석 기술을 사자 이빨에서 나온 털을 분석하는 데 적용했다. 털에 남아 있는 핵 DNA를 통해 사자에게 잡아먹힌 동물들의 연령 등 정보를 탐색하고 핵 DNA보다 작지만 보존이 잘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분석해 모계 혈통을 추적했다.

그 결과 이빨에 남아 있는 털은 사람과 기린, 얼룩말, 영양, 오릭스, 워터벅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잡아먹힌 기린은 케냐 남동부에 사는 마사이 기린 아종으로 밝혀졌으며, 영양은 이 사자들이 사살된 곳에서 수십㎞ 이상 떨어진 곳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말리 교수는 "생명공학 발전으로 유전체학처럼 과거 정보를 얻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 연구는 과거 사자의 생태와 식습관뿐만 아니라 식민지화가 아프리카 지역의 생명과 토지에 미친 영향도 알려준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인 알리다 드 플라밍 박사는 "영양 서식지는 차보 사자가 사살된 곳에서 80㎞ 이상 떨어져 있다"며 "이는 차보 사자들이 알려진 것보다 더 멀리 이동해 사냥했거나 당시 차보 지역에도 영양이 살았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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