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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첨단기술 미·중에 뒤처졌는데 투자도 발 묶여[위기의 독일 경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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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등 첨단 산업 전략 마련했지만
예산 자동차·전자기계에 치중돼
투자 부족한 천담산업 뒷걸음질
헌법으로 재정적자 제안한 것도
첨단기술 육성에 필요한 투자 막아


매일경제

독일 정부도 제조업 중심 경제모델이 수명을 다할 것을 예상해 연구·개발(R&D) 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문제는 첨단 산업 분야에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정부는 2006년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전략으로 ‘하이테크 전략 2025′를 발표했다. 현재 독일의 R&D 지출은 GDP의 약 3%로 유럽 평균보다 많다.

문제는 R&D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자동차와 전자기계 등 기존 독일의 주력 산업에 집중돼 AI, 전기차, 자율주행 등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미국유럽경제팀의 김민수 과장은 독일경제의 부진 배경과 시사점을 주제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투자성과가 대부분 자동차, 전자기계 등 기존산업에 집중돼있다”라며 “특히 전기차·자율주행 등으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상황에서도 내연기관 투자 비중이 높아 과거의 지배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충분한 투자를 받지 못한 독일 첨단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의 AI 전문인력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과 영국은 인구 10만명당 5.22개의 AI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1.9개의 스타트업을 보유하는 데 그쳤다. 또 세계지식재산권기구 데이터에 따르면 독일 기업이 출원한 특허 수는 2023년을 제외하면 2018년부터 매년 줄어들고 있다.

민간 투자자들도 첨단 산업 분야에서 뒤처진 독일 시장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의 민간 싱크탱크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에 대한 기업 투자는 지난해 5% 감소했다. 실물 자산에 대한 투자의 척도인 총 고정 자본 형성도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이 첨단 기술 육성에 필요한 정부 투자에 자체적으로 헌법 족쇄를 채운 것도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09년 경기 침체 시를 제외하고 GDP의 최대 0.35%까지만 재정적자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독일의 공공투자는 급감해 선진국 중 최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독일의 GDP 대비 공공투자 비중 2.5%인데, 이는 공공투자가 열악한 것으로 꼽히는 영국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유로존에서도 스페인을 제외하면 유로존 주요 고소득 국가 중 가장 낮다.

그 결과 2019년 4분기 이후 독일의 연평균 성장률은 0.3%로 미국(9.4%)은 물론 프랑스(3.8%)에도 크게 뒤처졌다고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경제학자 이사벨라 웨버는 지적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한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법을 우회하려고 시도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연말 위헌 판결을 내려 공공투자의 길은 막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헌법재판소의 ’부채 브레이크‘는 어리석고 나쁜 것”이라며 “재정적자에 제동을 거는 법안은 폐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개헌을 위해서는 의원의 3분의 2 승인이 필요한데,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정이 인기를 잃고 있는 가운데 극우 정당이 부상하고 있어 당장 개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학부 특임교수는 “독일 ’신호등‘ 연방정부를 이끄는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이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는 가운데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최근 튀링겐주와 작센주 등 2개주(州)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라며 “내년 총선에서 재집권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레임덕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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