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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사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윤 정부 문화정책 쇄신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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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0일밤 한강 작가 수상 소식을 전한 노벨상 홈페이지. 노벨상 홈페이지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그가 박근혜 정부 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수난을 당했던 과거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그의 수상은 인간 정신 자유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블랙리스트 같은 퇴행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검열 논란 등 창작·표현의 자유 위축 사례는 우려를 지울 수 없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 퇴행적 문화·언론 정책을 자성하고 정상화해야 한다.

한강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 당시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던 사실이 알려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사상적 편향’을 이유로 정부의 우수도서 보급 사업에서 탈락했다. 당시 정권은 한강을 해외행사 초청에서 배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해 말 한강은 강연에서 “5·18이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한강의 작가적 고투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한 지난 10일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뉴라이트 성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5·18에) 북한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버젓이 주장했다. 국가 폭력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진실화해위 존재이유임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경기교육청의 공문 이후 지역 초중고교에서 유해도서로 폐기된 2528권 중엔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2022년엔 풍자만화 ‘윤석열차’의 중고생 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을 정부가 문제 삼으면서 전시회가 돌연 취소됐다. 부마민주항쟁 43돌 기념식에서 공연 예정이던 가수 이랑은 주최 측인 행정안전부로부터 노래 교체를 요구받다가 결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최대 출판지원 정책인 세종도서 사업 진행을 지연시키고 문학나눔 사업 예산을 전면 삭감하기도 했다. 권력에 비판적인 예술인을 지원 배제 형식으로 탄압하던 블랙리스트와 하등 다를 게 없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 사회가 인간 존엄과 예술 창작·표현의 자유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부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김대중 정부 정책을 새기길 바란다. 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우리 사회가 절대적 공리로 삼는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

경향신문

2024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016년 5월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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