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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해방 후 전세계가 ‘코리아’ 외치게 한 그 이름... ‘서윤복길’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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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최초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서윤복 이름 딴 길 77년 만에 개통

조선일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이대역 소광장에서 ‘서윤복길’ 제막식이 열렸다. 서윤복길은 해방 이후인 194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수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사진은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서 선수의 막내딸 서정실(65)씨가 서윤복길 명판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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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열린 미국 보스턴 마라톤. 키 160㎝ 동양인이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시간25분39초. 세계 신기록이었다. 동양인이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 이 선수가 어디서 온 선수인지도 몰랐던 관중은 선수의 가슴팍에 적힌 ‘KOREA(코리아)’를 따라 외쳤다. 그는 해방 이후 태극기와 KOREA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 서윤복 선수였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에 그의 이름을 딴 ‘서윤복길’이 생겼다. 그가 우승한 지 77년 만이다.

마포구와 숭문총동문회 서윤복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날 지하철 이대역 소광장(옛 이대녹지 쉼터)에서 서윤복길 제막식을 열었다. 서윤복길은 이대역에서 대흥역까지 1.2㎞, 서 선수가 졸업한 숭문고 앞 길이다.

마포구는 서윤복길의 출발점인 이대역 소광장의 이름을 ‘서윤복쉼터’로 바꾸고 명판을 세웠다. 명판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전 세계가 연호한 코리아! 코리아! - 1947년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 서윤복’이라고 썼다. 가슴에 태극기와 KOREA를 단 서 선수가 월계관을 쓰고 있는 모습도 그렸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노숙자들이 많아서 골치 아팠던 소광장이 오늘 영웅의 이름을 딴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이 계기가 됐다.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남승룡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스토리를 담은 영화다. 오천진 서윤복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영화를 보고 생각해보니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의 이름을 딴 길은 있는데 서 선수는 없었다”며 “’아차’ 하며 머리를 쳤다”고 했다. 손기정로는 서울 중구·마포구에, 남승룡길은 전남 순천에 있다. 숭문총동문회는 곧장 성금 1억원을 모으고 위원회를 출범했다. 여기에 마포구가 힘을 보탰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마포구와 위원회는 이날 서윤복길 일대를 그라피티(벽화) 거리로 조성하고 매년 그라피티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송대섭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는 “서 선수의 우승 스토리를 바탕으로 후대인 젊은이들이 맘껏 그리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숭문중·고 담장 등 벽화를 그릴 공간은 충분하다”고 했다. 서윤복쉼터에는 가로 12m, 세로 10m 크기의 벽화와 서 선수 흉상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은 호텔 외벽에 오타니 쇼헤이(LA다저스) 선수의 벽화를 그려 관광 명소가 됐다. 투숙객도 1년 새 3배로 늘었다고 한다. 마포구 관계자는 “이대역~대흥역 일대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이라며 “서윤복길 개통을 계기로 민관이 협력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서 선수의 막내딸 서정실(65)씨와 후배 김원식 스포츠해설가가 참석했다. 정실씨는 “아버지는 항상 애국과 한국 육상의 발전만 생각하셨던 분”이라며 “살아계셨다면 오늘 정말 행복해하셨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제막식 소식을 듣고 전남 함평에서 올라왔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에 마라톤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LA 올림픽 때 선배님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힘들면 국가를 생각해라’ 격려해주셔서 힘을 얻었다”며 “그동안 선배님의 이름을 딴 길이 없어서 항상 아쉬웠는데 77년 만에 기쁜 소식을 듣고 바로 상경했다.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서 선수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은 당시 한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코리아를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서 선수는 코스에 뛰어든 개 때문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달렸고 결국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당시 한반도는 좌우 갈등이 심했는데 그의 낭보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태극기를 흔들었다. 백범 김구는 “서윤복이 조선을 하나로 만들었다”며 ‘족패천하(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휘호를 써서 선물했다. 당시 서 선수의 우승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됐다.

그러나 서 선수는 선수로서는 ‘비운의 마라토너’였다. 1947년 24세 나이로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지만 이듬해 런던 올림픽에서는 27위에 그쳤다. 1949년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등 대회에서 대한민국 마라톤 감독을 지냈고 2017년 별세해 현충원에 안장됐다. 대한체육회는 2013년 그를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했고 문화재청은 2021년 서 선수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 메달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최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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