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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1회성 빼야" vs "1번 때리면 무죄?"…직장 괴롭힘 요건, '반복성' 추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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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5년간 '법 위반 없음' 10건 중 3건

고용부 국감서 요건 추가 의견 제시돼

경영계·정부 "기준 모호해 행정력 낭비"

노동계 "신고 문턱↑…피해 입증 어려워"

기준 명확해야한다는 점에선 공감대 이뤄

뉴시스

[서울=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 삽화.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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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5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괴롭힘을 판별하는 기준에 지속성과 반복성을 추가하자는 의견이 최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허위신고를 차단해 행정력 낭비를 막자는 취지에서다.

다만 신고 문턱이 높아져 노동자 권리구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와 충돌한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정의도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에 따르면, 금지법 시행 후 5년 간 고용부에 접수된 사건은 4만3446건이다. 이 중 처리완료된 사건은 4만2957건이다.

처벌의 종류로 분류해보면 개선지도가 10.2%(4362건), 과태료 1.4%(603건), 검찰송치 1.87%(800건) 등이다. 신고 취하는 30.5%(1만3009건)으로 집계됐다.

주목해야 할 숫자는 '기타'로 처리된 건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해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는 경우, 조사가 불가능한 경우, 법 위반사항이 없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기타로 처리된 사건은 56.8%(2만4183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법 위반사항 없음'은 1만2805건으로 30% 수준이다. 10건 중 3건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법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행정력이 낭비되고 불필요한 조직 내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충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본다.

"기준 주관적…지속성·반복성 요건 추가해 오남용 막아야"


경영계 및 여당은 해당 기준이 주관적이라며 지속성 및 반복성 요건을 추가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현재 지속 반복 요건이 없고 1회성이라도 문제가 되면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해 오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며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 있거나 부서가 마음에 안 들면 신고해 근무 장소를 바꾸려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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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민석 차관. 2024.10.10. kkssmm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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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해외 사례를 보면 주 1회 이상 반복 혹은 6개월 이상 지속 발생 등의 요건이 있다"며 "명확하고 객관적인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이자 의원도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요건이 애매모호하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1회성에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괴롭힘이 있어도 '기타' 범위로 빠져나갈 수 있다"며 "성립 기준에 지속성, 반복성을 포함하고 명확성의 원칙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고용부는 올해 4월 지속성 및 반복성 요건이 추가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노동법이론실무학회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받은 바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아일랜드, 호주 등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에 반복성을 포함하고 있다. 폴란드와 노르웨이는 지속성과 반복성 모두 명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행법엔 해당 요건이 포함되지 않아 괴롭힘 여부 판단에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며 단순히 1회의 가해 행위나 일시적인 가해행위 중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없는 행위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아울러 김민석 고용부 차관은 10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고용부의 신고처리 현황과 관련해 "현장에서 보면 행정낭비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다"며 "지속성, 반복성 기준을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번 때린 건 죄가 아니고 여러 번 때려야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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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 토론회 '직장 내 괴롭힘 패러다임의 전환 : 갑질에서 안전으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07.09. kkssmm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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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노동계 및 시민단체 등은 요건을 추가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직장 내 갈등과 괴롭힘의 경계에서 피해 사실 입증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관계자는 "한 번 때린 건 죄가 아니고 여러 번 때려야 죄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측에서도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피해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지속성과 반복성을 어떻게 판단할 지도 문제"라고 짚었다.

또 지속·반복성 요건의 추가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도 나온다. ILO 협약 190호는 폭력과 괴롭힘의 정의로 "1회성인지 반복적인지와 무관하게"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노동 관련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7일 국회 환노위와 고용부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선 및 제도 운용 의견서'를 제출하며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을 현행대로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의견서는 "지속·반복성이라는 것 역시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이를 요건에 포함할 경우 갈등과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첫 번째 판단기준으로 적용돼 괴롭힘의 문턱을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반대 측에서도 현행 금지법의 괴롭힘 인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노총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을 맞이해 낸 논평에서 신고 건수가 늘어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모호한 기준'을 꼽았다.

고용부의 신고사건 처리 현황을 보면 접수된 사건의 건수는 2021년 7774건, 2022년 8961건, 지난해 1만1038건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한국노총은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적 판단기준 명확히 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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