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하기 위해 준비하는 정황이 14일 우리 군에 포착됐다. 군은 일선 부대에 대북 감시경계와 화력대기태세 강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11일 평양 무인기 침투를 주장한 이후부터 연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대남 압박을 강화함에 따라 우리 군도 이에 맞대응하고 있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위험이 에스컬레이터 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무대응 원칙을 유지했다.

경의선 도로 주변에 흙더미 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폭파를 준비하는 정황이 우리 군 감시장비에 14일 포착됐다. 이날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 일대 경의선 도로 위 구조물 인근에 흙더미(붉은원)가 쌓여 있다. 파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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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도로에 가림막을 설치해 놓고 그 가림막 뒤에서 작업하는 것들이 식별되고 있다”며 “도로를 폭파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고, 빠르면 오늘(14일)도 (폭파가)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 군 관계자는 “북한이 도로 인근에 땅을 파고 있고 폭약 등을 설치할 것으로 보인다”며 “(콘크리트 등으로) 포장된 도로를 완전히 없애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북한군 총참모부는 9일 보도문에서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로 요새화하는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고 발표하고 유엔군사령부에 이를 통보했다. 북한은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국가론’을 선언한 후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지뢰를 매설하고 대전차 방벽을 설치하는 등 휴전선을 봉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가림막 설치와 폭파 준비 작업은 총참모부의 발표로 이뤄졌다. 다만 총참모부 발표처럼 도로 단절을 넘어 요새화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남한에 보여주기식 폭파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의 레일·침목은 지난 8월 이미 제거를 완료했다.

최근 북한은 국경선 봉쇄뿐만 아니라 남한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을 겨냥한 군사적 긴장을 증폭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엔사는 이날 “평양 상공에 출현한 드론들(무인기)과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주장에 대해 공개된 보도를 통해 인지하고 있다”며 “유엔사는 현재 이 문제를 정전협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북한 총참모부는 전방 포병연합부대와 중요 화력 임무가 부과된 부대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예비작전 명령을 하달했다고 밝혔다. 북한 전방군단 예하의 혼성포병여단에 준비명령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해당 부대는 170㎜ 자주포, 240㎜와 300㎜ 방사포 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와 대북전단.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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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추가 발표한 담화에서 “평양 무인기사건 주범이 대한민국 군부쓰레기들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며 “핵보유국 주권이 미국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하여 침해당하였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한·미를 함께 비난했다. 북한 노동신문도 이날 ‘무모한 도전 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는 김 부부장의 지난 13일 담화를 1면에 실었다. 노동신문 1면에는 김 부부장 담화와 함께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겨냥한 국방성 대변인 담화도 함께 배치했다.

국방성 대변인 담화는 ‘무시가 최고의 정답’이라고 말한 신 실장의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으며 “입 부리를 놀려대며 허세나 떨고 자기 국민의 목숨을 놓고 도박을 하며 체면 세우기에나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또한 평양에 침투한 무인기가 민간단체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무인기는 활주로가 있어야 이륙이 가능한 ‘고정익’이라며 “한국 군부세력이 가담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적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한국의 무인기 침범 사건과 관련해 지난 12일 외무성이 '중대 성명'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온 나라가 '보복 열기'로 끓는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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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도 북한이 대남 위협수위를 높이자 일선 부대에 대북 감시경계와 화력대기태세 강화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은 공식적으로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 확인해 주지는 않고 있지만, 이성준 실장은 “북한이 도발하면 우리는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히 응징할 것”이라며 “군이 선 조치 후 보고하고 강력히 대응하도록 하는 훈련과 지침들이 하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감시경계태세가 강화되면 열상감시장비(TOD) 운용 시간 등이 늘고, 화력대기태세가 강화되면 임무에 즉시 투입되어 사격이 가능하도록 대기하는 화력 전력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수 합참의장은 이날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와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 중인 천안함을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했다. 합참에 따르면 김 의장은 인천해역방어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적 도발 때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각·강력히·끝까지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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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의 위협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서다. 북한이 평양에 적의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발표하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북 주민에게 남한을 적으로 각인시키고 외부로 시선을 돌려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우리 군은 판단하고 있다. 군 당국도 메시지를 내거나 합참의 예하 부대에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으로 해석된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그동안 취약한 체제 내부를 결집하고, 주민을 통제하기 위해 외부의 위기와 긴장을 조성하고 과장해 활용해 왔다”며 “갑작스럽고 유난스러운 무인기 소동도 유사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 대변인은 “북한은 본인들이 필요할 때 내부의 수요라든지 다른 목적하에서 위기 상황을 고조해 왔다”면서 2020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2015년 비무장지대(DMZ) 일대 목함지뢰 매설 등을 예로 들었다.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찾은 합참의장 김명수 합참의장(왼쪽)이 14일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를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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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체제 결속을 위해 위기를 고조시켰지만 상황의 추가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 “속히 타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도발 행위의 재발 방지를 담보해 나서야 한다”고 말한 것은 더는 확전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3일, 9일, 10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민간단체가 있는지, 무인기를 사용해 전단을 북측에 보내는 단체를 아는지 등을 물었을 때는 “북한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해 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답을 하지 않았다. 합참도 북한이 우리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해 대북전단을 살포했다는 주장에 관해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내부 혼란을 가중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이 신 실장을 겨냥한 담화문도 냈지만,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대응하는 순간 말려든다. 북한이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며 “야당에선 벌써 진상조사단을 꾸리겠다고 하는데 이런 게 딱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현모·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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