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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노벨문학상 신드롬’에…한강 소설 영감받은 미술 작품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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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최초 노벨문학상 한강
한폭의 그림 같은 문장들
다양한 작가들에게 영향
직접 작업에 참여하기도
“그림 볼 때 떠오르는 것
스며 들어오듯 소설 써”


매일경제

일본 출신 설치미술가 시오타 지하루의 ‘In Memory(기억 속에)’(2022). 한강의 소설 ‘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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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소설가 한강이 한국작가로서는 처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된 가운데, 그의 소설에 영감 받은 미술 작품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문장들로 인간 내면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한강의 소설을 그림, 조각,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 다른 장르로 재해석한 이들 작품은 소설이 만든 공감과 연대의 물결을 한층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출신 설치미술가 시오타 지하루는 지난 2022년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당시 대표작 ‘In Memory(기억 속에)’(2022)를 소개하면서 한강의 소설 ‘흰’(2017)을 언급했다. 그는 “‘흰’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등장인물과 내 처지가 비슷해 크게 공감했다. 흰색은 삶을 의미하기도,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흰’은 강보, 배내옷, 입김, 백지, 백발, 수의 등 65가지 흰 것에 관한 조각글을 엮은 소설로,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한 작가의 칠삭둥이 언니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오타는 ‘흰’을 모티브 삼아 흰 실과 흰 배, 흰 옷 등으로 기억의 바다에서 헤매는 인간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내 안의 집’(2019) 역시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2014)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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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White Nostelgia, HAM’(2023).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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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 ‘꽃 핀 쪽으로’는 참여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한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6장 제목을 그대로 따오기도 했다. 가구 디자이너이자 미술작가인 김현희도 지난해 신작 ‘White Nostelgia, HAM’(2023)을 소개하면서 “‘흰’을 읽고 떠올랐던, 내가 아주 작은 존재였을 적의 크고 무거웠던 어느 겨울 밤을 담았다”고 밝혔다.

조각가 김은형은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이 나무처럼 변해가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불안정성을 표현한 조각과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채식주의자’(2007)는 인간의 폭력성 때문에 인간이길 원치 않는 주인공 ‘영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삶을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폭력을 거부하려는 영혜의 식물적인 삶과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 사이의 충돌을 그린다.

역으로 한 작가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준 미술 작품도 있다. 지난 2002년 미술관에서 마주한 곽인식 작가의 강렬한 색채 회화 ‘작품 80-M’(1980)은 한 작가가 그해 여름부터 7개월에 걸쳐 쓴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의 표제작 ‘노랑무늬영원’의 모티브가 됐다. ‘노랑무늬영원’은 개를 피하려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양손을 쓰지 못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면서 여자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계기는 빛처럼 찬란한 노랑색, 파랑색 타원형 점으로 그려진 Q의 그림을 만나면서다. 곽 작가 그림을 오마주한 소설 속 Q의 그림은 이 소설집의 표지 이미지로도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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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표지 그림의 모티브가 된 곽인식 작가의 ‘작품 80-M’(1980). 대구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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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표지. 곽인식 작가의 회화를 오마주한 극중 Q의 그림이다. 문학과지성사


한 작가가 직접 미술 작업에 참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19년 미국 카네기미술관의 국제기획전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초대된 한 작가는 18분 40초 분량의 비디오 아트 ‘작별하지 않는다’를 선보였다. 흰 천을 들고 눈 덮인 숲을 걷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의 제목이 됐다. 2016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차미혜 작가와 함께 ‘소실.점’ 전시를 열고, ‘배내옷’ ‘돌·소금·얼음’ ‘밀봉’ ‘걸음’ 등 4개의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역시 소설 ‘흰’의 요소다.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9월 개막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부딪침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 등 3개의 섹션 소제목을 작명하면서 전시의 기획의도가 우리말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처럼 미술과 인연이 깊은 한 작가는 앞서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직후 한국에서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어린 시절 같이 살던 막내 고모가 미대를 다녔는데, 고모의 방에 가면 항상 그림들이 가득했다. 덕분에 미술에 대해 친근한 느낌을 갖고 성장했던 것 같다”며 “그림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한다. 작품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스며 들어오는 느낌으로 소설을 써왔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2012년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시인 이상의 회화 작품과 문학의 상호 연관성을 연구한 ‘이상(李箱)의 회화와 문학세계’란 제목의 석사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이 논문에 이렇게 썼다. “동일한 창작자가 창작한 회화와 문학 작품에는 필연적으로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고 볼 때, 이를 발견하는 일은 창작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이는 한 작가의 문학과 미술 작품들에 비춰 봐도 들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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