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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한강 작가 그릴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머리카락... 채식주의자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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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초상화가 엘메헤드 본지 단독 인터뷰

조선일보

스웨덴 화가 니클라스 엘메헤드와 그가 작업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설가 한강의 초상화./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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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스포츠 경기나 공연과 비슷합니다. 엄청난 부담감이 따르는 일이죠.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매일 제 그림을 보게 될 테니까요.”

매년 10월 노벨상 발표 주간이면 세계에서 가장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는 스웨덴 화가 니클라스 엘메헤드(47)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노벨위원회가 문학·경제·화학·물리·평화·의학 등 모든 부문 수상자 명단을 처음 공개할 때 함께 쓰인다. 지난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초상화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전날 마지막 부문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초상화 작업을 마친 그를 15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2012년부터 노벨위원회 아트디렉터로 일하며 수상자의 초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를 발표할 때 실물 사진을 썼다.

–매우 바쁜 한 주였겠다.

“굉장히 압축적으로 바빴다. 오늘은 전체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액자에 담아 노벨재단 본부 사무실 벽에 설치하러 가야 한다.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출발할 예정이다.”

–노벨위원회가 사진을 초상화로 바꾼 이유가 있나.

“(노벨위원회에) 채용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관이 ‘수상자를 발표할 때 사진을 첨부해야 하는데, 알맞은 사진을 못 찾을 때가 종종 있다. 대안이 없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는데 그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졌다.”

엘메헤드가 아트디렉터를 맡은 첫해와 이듬해인 2013년엔 실물 사진을 찾지 못한 수상자에 한해서만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주요 외신이 수상자 기사에 그가 그린 초상화를 쓰자, 예상보다 호응이 좋았다. 2014년 노벨위원회는 그에게 “우리(노벨상)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엘메헤드는 “처음 서너 해 동안은 검은색 윤곽선과 파랑·노랑을 함께 사용했고, 이후엔 검정과 금색을 사용했다”며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초상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4년 노벨위원회는 그에게 “우리(노벨상)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엘메헤드는 “처음 서너 해 동안은 검은색 윤곽선과 파랑·노랑을 함께 사용했고, 이후엔 검정과 금색을 사용했다”며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초상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얼마나 걸렸나.

“작업 시간은 정말 엄청난 비밀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작업 시간을 공개하면 노벨상이 발표 얼마 전에 확정되는지 드러날 수 있어 기밀이라고 한다.)

–한강 작가를 그릴 때 특히 강조한 부분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작업 특성상 인물의 외적 특징을 단순화해야 하는데, 긴 머리나 수염 같은 특징을 묘사하는 데 특히 공을 들인다. 그(한강)의 긴 머리카락을 굵은 선 10개·12개로 표현하기가 재미있었다.”

–한강 작가가 쓴 책을 읽어봤나.

“아직 못 읽었다. (종이 책보다는) 보통 그림을 그리면서 오디오북을 듣는데, 아직 내가 사용하는 (도서 판매) 플랫폼에선 한강의 책을 찾을 수 없더라. 그렇지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니 조만간 그녀 작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벨위원회의 여러 사람이 ‘채식주의자’를 읽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읽는 책도 그 책일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당신은 매년 역사를 기록하는 셈이다. 초상화를 그릴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작업이 스포츠 경기나 공연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이에게 내 그림이 공개되고, 제한된 시간에 한정된 도구와 스타일로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엄청난 부담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잘 준비해야 한다.”

–10년 넘게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사람은.

“인물을 찍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참고할 만한 사진이 제한적일 때 애먹는다.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은 평소 언론에 잘 나오는 편이어서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진을 찾을 수 있지만, 학자는 반대가 많다. 95세 과학자가 상을 받았다고 해보자. 내가 찾을 수 있는 사진은 수십 년 전 그가 실험실 한구석에서 찍은 저화질 사진뿐일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인물이 잘 표현될 수 있게 그려야 하는 일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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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초상화.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발표하며 함께 공개한 것이다. /노벨상 공식 X(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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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그리기 가장 쉬웠던 사람은.

“역시 특정 인물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주름이 있는 경우가 보통 그리기 쉽다. ‘거친 얼굴(rough face)’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은 윤곽선이나 양감을 표현하는 금색으로 강조하기 쉽기 때문이다. 밥 딜런(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년 노벨 문학상) 등의 초상화를 빨리 그린 편이었던 것 같다.”

엘메헤드는 노벨위원회 심사위원과 함께 수상자 정보를 사전에 아는 극소수 인물 중 하나다. 수상자 발표와 동시에 초상화가 공개되는 탓에, 미리 그림을 그려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수상자를 언제 통보받는지, 작업에 얼마나 걸리는지는 절대 알려줄 수 없는 극비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솔직히 가족이나 친구에게 수상자를 슬쩍 알려준 적 없나.

“절대 없다. 수상자 정보는 철저히 혼자만 알고 있다. 내게 주어진 책임이 크고 막중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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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화가 니클라스 엘메헤드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단체 '니혼 히단쿄'의 상징인 종이학을 그리며 동료가 접어준 종이학 모형을 관찰하고 있다./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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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이 종종 그렇듯이, 수상자가 단체면 어떻게 하나.

“상징하는 물건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올해 평화상 수상자가 그랬다.(올해 수상자는 일본의 반핵 단체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였다. 엘메헤드는 초상화 대신, 단체의 상징인 종이학을 그렸다.) 단체 홈페이지에 갔더니 학이 있어서 그걸 그리기로 했다. 그런데 홈페이지 그림은 너무 단순화돼 있었다. 그래서 종이접기를 잘하는 동료에게 부탁해서, 종이학을 하나 접어달라고 한 후 이를 모델로 해서 학을 그렸다. 정말 재밌었다.”

–노벨상 발표 시기가 아닐 때는 뭘 하며 지내나.

“스튜디오에서 개인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른 고객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스웨덴 축구 국가 대표팀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나 모션 그래픽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몇 주간은 이미 작업하던 프로젝트를 재개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노벨상 주간이 이제 막 끝났기 때문에) 이젠 좀 쉬엄쉬엄 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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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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