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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검찰의 ‘특활비 잔액표’ 집단 비공개… 세금 오남용 숨기려 무단 삭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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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검찰청이 대법원 확정 판례에 따라 특수활동비 지출증빙 자료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판결 내용을 무시하고 특수활동비 월별 배정액과 이월 금액을 정리한 ‘잔액표’를 집단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잔액표는 검찰 특수활동비 내부 지침상 의무적으로 작성해 남겨야 하는 지출증빙 양식 중 하나다. 잔액표에는 전국 검찰청이 매달 배정 받는 특수활동비 액수와 전 달까지 쓰지 않고 넘긴 이월금이 기재돼 있어, 특수활동비 ‘연말 털어쓰기’ 같은 예산 오남용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때문에 전국 검찰청이 예산 오남용을 숨기기 위해 조직적으로 잔액표를 무단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검찰 특수활동비 장부 속 ‘잔액표’… 검찰 예산 오남용의 ‘결정적 단서’
뉴스타파를 포함한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은 대검찰청을 포함한 전국 67개 검찰청에서 2017년부터 2023년 4월까지 쓴 특수활동비의 지출증빙 자료를 받아냈다.

이 가운데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의 특수활동비 지출내역기록부에는 다른 검찰청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정보가 있다. 매달 특수활동비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잔액을 기록한 표다. 특히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작성된 잔액표는 검찰 특수활동비 오남용을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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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특수활동비 지출내역기록부 속 잔액표
2021년 12월, 서산지청의 특수활동비 잔액표를 보면, 서산지청이 12월에 배정 받은 특수활동비는 746만 원이다. 전 달인 11월까지 다 쓰지 않아 이월된 특수활동비도 69만 8,600원으로 나온다. 12월 배정액과 이월 금액, 이 둘을 더해 2021년 12월에 서산지청이 쓸 수 있던 특수활동비는 815만 8,6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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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 잔액표를 통해 드러난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의 특수활동비 ‘연말 털어쓰기’ 의혹
서산지청은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13차례에 걸쳐 74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썼다. 특수활동비 예산의 잔액은 75만 8,6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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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 잔액표를 통해 드러난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의 특수활동비 ‘연말 털어쓰기’ 의혹
서산지청은 12월 13일, 2021년 한 해의 마지막 특수활동비를 지출했다. 액수는 남아있는 잔액과 정확히 같은 75만 8,600원이었다. 이렇게 연말 마지막에 75만 8,600원을 집행함으로써 서산지청은 2021년의 특수활동비 예산 잔액 즉, 불용액을 0원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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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 잔액표를 통해 드러난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의 특수활동비 ‘연말 털어쓰기’ 의혹
서산지청뿐만이 아니다. 매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특수활동비를 100원이나 10원 단위까지 털어 쓰는 지출 행태는 전국 상당수 검찰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실제 전국 모든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불용액은 매년 0원으로 기재돼, 국회에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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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모든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불용액은 매년 0원으로 기재돼, 국회에 보고된다.
연말에 멀쩡한 보도 블록을 갈아엎고 새로 깔 듯, 실제로는 기밀 수사 등 특수활동 수요가 없는데도 예산 불용액을 0원으로 만들기 위해 12월에 특수활동비를 10원 단위까지 전부 쓴 것 아니냐는 ‘연말 털어쓰기’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은 의혹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서산지청의 특수활동비 잔액표가 드러나면서 검찰의 해명은 무색해졌다. 검찰이 연말에 특수활동비를 털어 쓴 사실이 잔액표를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 지침 통해 특수활동비 지출 장부에 잔액표 작성 ‘의무화’
뉴스타파는 서산지청을 제외한 나머지 66개 검찰청에서도 특수활동비 잔액표를 작성해 남겼는지 확인에 나섰다.

그런데 서산지청 말고, 특수활동비 장부에 잔액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찰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어찌된 걸까.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되는 특수활동비 잔액표를 서산지청만 일부러 작성했던 걸까.

그게 아니었다. 검찰의 특수활동비 자체 지침 전문이 최근 국회에 처음으로 공개되면서 ‘새로운 진실’이 밝혀졌다. 자체 지침은 특수활동비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검찰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자체 지침의 본문은 총 4장 분량이다. 본문 뒤에는 전국의 모든 검찰청이 의무적으로 작성해 남겨야 하는 6종류의 지출증빙 자료의 양식이 첨부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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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특수활동비 자체 지침 (취재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
그 중 하나가 바로 특수활동비 지출 장부다. 그런데 이 양식의 맨 아래쪽을 보면, 잔액표 양식이 있다. 검찰이 자체 지침을 통해 특수활동비 잔액표의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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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특수활동비 자체 지침에 첨부되어 있는 지출 장부 양식. 특수활동비 잔액표의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취재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
전국 66개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장부에서 ‘사라진’ 잔액표, 그리고 두 가지 가능성
그렇다면 대체 왜 서산지청을 제외한 나머지 전국 검찰청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장부에서는 잔액표가 보이지 않는 걸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①서산지청을 뺀 나머지 검찰청은 아예 잔액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②잔액표 작성을 하기는 했는데, 잔액표를 삭제한 특수활동비 지출 장부를 공개한 것. ①이 맞는다면 전국 검찰청의 집단적인 자체 지침 위반에 해당하고, ②라면 조직적인 대법원 확정 판결 무시에 해당한다.

검찰, 대법원 확정 판결 무시하고 특수활동비 장부 잔액표 ‘무단 삭제’
그런데 뉴스타파가 전국 검찰청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장부를 다시 한번 살펴본 결과, 일부 검찰청 장부에서 잔액표를 삭제한 흔적이 확인됐다. 때문에 ‘연말 털어쓰기’ 같은 예산 오남용을 숨기기 위해 전국의 검찰청이 조직적으로 잔액표를 지운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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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전국 검찰청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장부를 살펴본 결과, 일부 검찰청 장부에서 잔액표를 삭제한 흔적이 확인됐다.
검찰이 조직적으로 잔액표를 지운 것이 맞다면, 이는 명백한 사법부 무시 행위다. 검찰 특수활동비 지출증빙 자료와 관련한 정보공개 행정소송의 판결문에는 검찰이 공개해야 하는 정보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특수활동비 집행 사유와 특수활동비를 받아간 검사의 이름만 빼고, 전부 공개하라고 나와 있다.

특수활동비 지출 건에 대한 지출증빙서류. 지출결의서, 내부결재서류, 현금수령증 등 지출을 증빙하는 서류. 집행내용(집행명목), 수령인 성명은 제외.
- 검찰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행정소송의 확정 판결문


“검찰의 판결 불이행은 법치주의, 국가 법질서 교란 행태”
뉴스타파와 함께 검찰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벌인 하승수 변호사는 “검찰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은폐하기 위해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무시하며 법치주의, 국가의 법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법질서 교란 행위가, 검찰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벌였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누가 잔액표의 삭제를 지시했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잔액표가 다 있는데 그걸 고의적으로 가리고 자료 공개를 한 거니까 일종의 법원의 판결을 위반해서 정보를 은폐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국가 법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죠. 법관이 ‘이거는 비공개 정보, 이거는 공개해도 되겠다’ 이렇게 구분을 해서 판결을 내려주는 건데, 비공개로 분류한 것이 아닌데, 공개돼야 되는 자료인데 이걸 비공개해버린다면 그것은 법원의 판결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고, 일종의 법치주의 자체를 교란하는 행위인 거죠.
- 하승수 변호사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뉴스타파는 서산지청을 제외한 전국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자료에 잔액표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예산 오남용을 숨기기 위해 잔액표 정보를 무단 삭제한 것은 아닌지, 대검찰청에 질의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보내오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 임선응 is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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