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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재산 다 쓰고 가겠다"…자식이 용돈 줘도 달갑잖은 '新노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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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7일 오전 대구 수성구 고모동 팔현파크골프장에서 열린 '제3회 대한노인회 수성구지회장배 파크골프대회'에 출전한 어르신들이 실력을 겨루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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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사는 안모(68)씨는 부인과 단둘이 산다. 안씨는 보험 대리점 업무로 매달 200만~300만원씩 꼬박꼬박 벌어들이고 있다. 집도 본인 소유인 데다, 안정적 소득이 있다 보니 틈날 때마다 부인과 국내 여행을 다니는 게 취미다. 취직한 자녀가 둘 있어도 일부러 용돈을 받지 않는다. 설이나 추석, 안씨의 생일에나 자녀들이 건네는 봉투를 마지못해 받는다. 그나마도 손자들 용돈이나 선물로 더 많이 돌려주곤 한다. 안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직장에 다니며 방송통신대를 다녀 대졸자가 됐다. 그는 “주변 친구 중엔 은퇴한 이가 적지 않지만, 힘닿는 데까지는 일하면서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직접 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보고 노인이라지만, 최소 5년 이상은 더 일할 수 있다. 자기만족 측면에서도 일거리가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김모(67)씨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산다. 초등교사로 오래 일한 김 씨의 월 소득은 연금, 남편이 남긴 상가의 월세 등을 합쳐 월 400만원 정도 된다. 자가로 살고 있고, 특별히 아픈데가 없어 돈 들어갈 데가 많지 않다고 한다. 아들은 가정을 꾸려 서울에 살고, 미혼인 딸은 인근에 따로 산다. 그는 혼자 살지만 외롭지는 않다고 한다. 매일 아파트 수영장에서 운동하고, 동네 친구들과 주 3회 정도 파크골프를 친다. 주말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활동을 한다. 시시때때로 친구들과 제주ㆍ일본ㆍ베트남 등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김씨는 “바쁘게 살다 보니 외로울 틈이 없다”라며 “더 나이 들기 전에 운동도 하고 여행 다니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노인인구가 1000만명(지난 7월 기준)을 돌파한 가운데, 안씨와 김씨처럼 소득과 자산, 학력이 이전 세대보다 높아지고 활동적으로 생활하는 새로운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차츰 노인 대열에 합류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6일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통계를 담은 2023년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2008년부터 3년 주기로 65세 이상 노인의 사회ㆍ경제적 활동, 생활환경, 가치관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노인 1만78명을 방문ㆍ면접 조사했다.

국내노인 가구의 연간 소득은 3469만원, 개인 소득은 2164만원, 금융자산은 4912만원, 부동산 자산은 3억1817만원으로 모든 항목이 2020년 조사 대비 큰 폭으로 올랐다. 2020년 당시 가구 소득은 3027만원, 개인 소득은 1558만원, 금융자산은 3213만원, 부동산 자산은 2억6183만원이었다.

가구소득 구성을 보면 주로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53.8%)이 많았다. 이어 공적이전소득 25.9%, 사적이전소득 8.0%, 재산소득 6.7% 순이었다. 특히 자녀에게서 받는 용돈 등을 의미하는 사적이전소득은 2008년 30.4%에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일을 하고 있는 노인 비중은 계속 증가해 2017년 30.9%에서 2020년 36.9%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39.0%로 나타났다.

학력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최종 학력에서 고등학교 졸업 비율은 2020년 28.4%에서 31.2%로, 전문대 이상 졸업자는 2020년 5.9%에서 7.0%로 높아졌다. 고졸 이상 교육을 받은 비율은 2008년 첫 조사 때 17.2%에서 지난해 38.2%로 급증했다.

이들의 가치관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 기준을 물었더니 평균 71.6세로 조사됐다. 2020년 70.5세 대비 1.1세 상승한 수치다. 전체 노인의 79.1%는 노인의 연령 기준을 현행(65세 이상)보다 5세 높은 ‘70세 이상’이라고 답했다.

재산 상속 방식에 대한 조사에서 ‘모든 자녀에게 골고루 상속’ 51.4%, ‘자신 및 배우자를 위해 사용’ 24.2%, ‘부양을 많이 한 자녀에게 많이 상속’ 8.8%,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녀에게 많이 상속’ 8.4%, ‘장남에게 많이 상속’ 6.5% 순으로 답했다. 재산을 자녀에 상속하기보다는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응답은 2008년 첫 노인실태조사에서는 9.2%에 불과했는데, 2014년 15.2%, 2017년 17.3%, 2020년 17.4% 등으로 계속 늘어났고, 이번 조사에선 4명 중 1명 꼴로 선택했다.

중앙일보

김경진 기자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국장은 “재산 상속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라며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많이 진입했는데, 이들은 재산을 상속하기보다는 본인이 사용하고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장남에 더 많은 재산을 주겠다는 응답은 2008년 21.3%에 달했지만 이번에 6.5%까지 떨어졌다.

노인들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다소 나아졌다. 우울 증상이 있는 노인은 11.3%, 최근 1년간 낙상사고 경험은 5.6%, 최근 1개월간 병의원 외래진료를 이용한 비율은 68.8%로 조사됐다. 2020년 대비 각각 2.2%P, 1.6%P, 1.8%P 낮아졌다. 평균 2.2개의 만성질환을 가졌고, 만성질환이 없는 노인은 13.9%였다.

신체적 기능에 제한이 있다는 18.6%의 노인을 상대로 돌봄 상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47.2%는 돌봄을 받고 있었다. 돌봄제공자를 ‘장기요양보험서비스’라고 응답한 비율이 2020년 19.1%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30.7%로 나타났다. 그 외 가족 81.4%, 친척ㆍ이웃 등 20.0%, 개인 간병인 등 11.0% 순이었다.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은 10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노인 가구 형태는 부부 가구(55.2%), 1인 가구(32.8%), 자녀 동거 가구(10.3%) 순이었다. 이 중 1인 가구인 ‘독거노인’ 비율은 2020년 19.8%보다 13.0%P 급등한 반면,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 비율은 20.1%에서 9.8%P로 급락했다.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인 가구 급증에 대해 “베이비부머의 경우 이혼이나 별거 뒤 1인 가구 상태로 노년기에 진입하는 비율이 늘었고, 85세 이상에서는 (배우자) 사별 비율이 높은데 사별 후에도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거노인의 경우 건강 상태나 우울 증상, 생활상의 어려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었다. 독거노인 중 ‘건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4.2%로, 노인 부부 가구의 48.6%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우울 증상을 가진 비율도 16.1%로, 노인 부부 가구의 7.8%에 비해 높았다.

이에스더ㆍ남수현 기자 rhee.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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