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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재산, 자식에 안 주고 여생 즐길 것”… 경로당 대신 동호회 간다 [뉴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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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자산·교육 수준 높은 ‘신 노년층’ 등장

복지부 ‘2023 노인실태조사’ 결과

평균 금융 자산 5000만원 육박

부동산 자산도 3억원 처음 돌파

‘장남에 상속’ 비중 6.5%로 급감

“나와 배우자 위해서 쓸 것” 24%

노인 생각 연령 70.5→71.6세로

독거노인 늘어나 대책 마련 필요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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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정년퇴직한 김모(67)씨는 내년에 아내와 한 달간 유럽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짜는 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씨는 직장에 다니는 첫째 아들에게 서울 아파트를 물려주고 낙향하려던 젊은 시절 계획을 접고 여생을 최대한 즐긴 뒤 남은 재산은 세 자녀에 나눠줄지 사회에 환원할지 결정할 생각이다. 파크골프 동호회 외에 아내와 함께하는 동호회 모임에 적극적인 그는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강조했다.

노인들의 소득과 자산, 교육 수준이 3년 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면서 ‘새로운 노년층’이 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평균 금융 자산이 5000만원에 육박하고 부동산 자산은 처음으로 3억원을 넘어선 노년층은 ‘장남 상속’ 대신 ‘나와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는 생각이 크게 늘었고, 경로당 대신 친목단체나 동호회를 찾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3년 주기)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들의 연간 가구 소득은 2020년 3027만원에서 2023년 3469만원으로 442만원 증가하고, 금융 자산은 2020년 3213만원에서 지난해 4912만원으로 1699만원 늘었다. 부동산 자산 규모는 지난해 3억1817만원으로 처음으로 3억원을 돌파하는 등 가구 소득, 금융 및 부동산 자산 규모가 증가하는 추세다.

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한국갤럽이 지난해 9월4일∼11월12일 노인 1만78명(65세 이상)을 대상으로 191개 문항을 면접조사한 결과, 가구 소득 구성에서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은 2008년 39.0%에서 지난해 53.8%로 늘고, 사적이전소득은 30.4%에서 8.0%로 대폭 줄었다. 부모 등에게 물려받기보다 근로·사업으로 직접 버는 소득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하는 노인 비중도 2017년 30.9%에서 2020년 36.9%, 지난해엔 39.0%로 40%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평균 71.6세로, 2020년 70.5세 대비 1.1세 상승했다. 전체 노인의 79.1%는 노인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봤다.

노인들의 교육 수준은 고졸 비율이 2020년 대비 2.8%포인트 늘어난 31.2%, 전문대학 이상 졸업자는 1.1%포인트 증가한 7.0%로 향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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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재산 상속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도 두드러졌다. ‘장남에게 많이 상속하겠다’는 비중이 2008년 21.3%에서 지난해 6.5%로 크게 준 반면,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는 답변은 2020년 17.4%에서 지난해 24.2%로 증가했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국장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이들은 재산을 상속하기보다는 본인이 사용하고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인 연령 진입을 앞둔 김종철(63·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최근 운영하던 기업을 매각하고 훌쩍 1년의 여행을 떠났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던 그는 남은 생에서 ‘자아’를 찾겠다는 각오다. 박진호(63·가명)씨 사례도 비슷하다. 공기업에 다니던 그는 은퇴 후 기타와 드럼을 배우는 등 취미생활에 푹 빠져 있다. 노후의 삶에서 나를 중심에 놓는 이런 세태는 앞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노인들은 전통적인 경로당 대신 동호회나 커뮤니티, 친목단체를 찾는다. 2008년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이 46.9%로 절반에 육박했지만 지난해 조사에선 26.5%로 반토막났다. 대신 지난해 친목단체와 동호회 참여율은 2020년에 비해 각각 10.1%포인트, 1.9%포인트 늘었다. 전국 지자체들이 파크 골프장 개발에 열을 올리는 배경일 수 있다.

디지털 기기 접근성도 개선됐다. 지난해 스마트폰 보유율은 2020년(56.4%) 대비 20.2%포인트 폭증한 76.6%였고, 컴퓨터 보유율도 12.9%에서 20.6%로 상승했다.

대외 활동 확대 등으로 우울증을 가진 노인은 11.3%로 2020년 대비 2.2%포인트 감소했다. 아픈 노인도 줄었다. 최근 1년간 낙상사고를 경험한 노인은 1.6%포인트 감소한 5.6%였고, 최근 한 달간 병의원 외래진료를 이용한 비율도 소폭(1.8%포인트)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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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원에서 어르신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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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녀동거 가구가 감소하면서 늘어나는 1인가구, 즉 독거노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가구형태로는 부부가구(55.2%), 1인가구(32.8%), 자녀동거 가구(10.3%) 순인데, 특히 1인가구 비율은 2020년 조사 대비 13.0%포인트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평균 가구원 수도 2.0명에서 1.8명으로 줄었다.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독거노인 증가에 “예전에 비해 1인가구 상태로 노년기에 진입하는 비율이 늘었고, 85세 이상에서 사별 후에도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거노인은 ‘건강하다’는 응답이 34.2%로 노인부부 가구(48.6%)에 비해 낮았고, ‘우울증상’, ‘영양관리’, ‘생활상의 어려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른 가구에 비해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노인의 3.2%는 자녀와 연락이 두절됐고, 6.0%는 생존자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베이비부머의 본격적인 노년기 진입은 노인의 교육수준, 건강 및 경제상태의 전반적인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결혼상태와 가구형태 등 가족 구조와 사회적 관계의 질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직계가족 규모와 가족 간 교류가 축소되면서 가족의 경제적·기능적 돌봄의 역할이 약화되고 공적이전소득, 친척·이웃·친구·지인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노년 세대 내 격차도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재영·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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