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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여야가 팽개친 전세사기특별법 메운 조례, 그 함의와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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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 2022년 전세사기 피해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2년이 지났다. 여야 정치권은 2023년 전세사기피해특별법을 제정하면서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약속했지만 빈말에 그쳤다. 첫 개정은 1년 2개월이 흐른 2024년 8월에야 이뤄졌지만 그마저도 그후엔 감감무소식이다.

# 이런 빈틈을 메워준 건 지자체의 조례다.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지역에서 발생한 전세사기피해자를 돕는 경제적ㆍ비경제적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특별법을 대체하긴 힘들뿐더러 곳곳에서 빈틈이 노출되고 있다.

# 더스쿠프가 전국 지자체의 조례를 1편, 2편으로 나눠서 분석했다. 올 2월 보도한 '서울 지자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조례 분석' 기사의 후속이다. 2편은 10월 21일 발행하는 더스쿠프 통권 620호에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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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개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이 개정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애초 전세사기특별법은 여야가 6개월마다 보완입법을 하겠다고 약속한 법이었다. 사건이 끝나지 않아 피해자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첫 제정은 2023년 6월이었지만 첫 개정안은 그로부터 1년 2개월이 흐른 2024년 8월 28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전세사기특별법이 꿈쩍도 하지 않은 그때에 피해자들의 삶을 도운 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였다.

조례는 원래 지방자치단체에만 적용하는 규칙으로 '법'의 한계를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법'이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부분을 '조례'로 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스쿠프는 올 2월 보도한 '같은 서울 살아도 지원은 천차만별, 전세사기 조례 분석해보니…(통권 585호)'란 기사를 통해 서울의 25개 자치구별 전세사기피해 지원 조례 현황을 분석했다. 당시엔 25개 자치구 중 10곳에만 전세사기피해지원 조례가 있었는데, 7개월이 흐른 지금 조례를 제정한 곳은 16곳으로 늘어났다.

■ 분석❶ 경제적 지원 = 그렇다면 지방은 어떨까.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이하 전세사기피해지원위)에서 피해자로 인정한 건수는 서울이 26.5%로 가장 많았지만 경기(21.0%), 대전(13.2%), 인천(13.1%), 부산(10.7%) 등 다른 지역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했다. 그래서 이번엔 '서울 밖 지역'의 전세사기 조례 현황도 살펴보기로 했다.

전세사기피해지원 조례를 지정한 시ㆍ도ㆍ광역자치단체(서울 제외ㆍ9월 30일 기준)는 모두 41곳이었다. 이들이 제정한 전세사기피해지원 조례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제적 지원과 비경제적 지원이다.

조례가 정한 경제적 지원은 지방세 납부 기한 연장,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료 지원, 이사비 지원, 월세 지원, 소송수행경비 지원, 중개수수료 지원, 긴급생계비 지원, 대출 이자 지원 등 8개였다.

이중 가장 많은 건 이사비 지원(20곳ㆍ48. 8%)이었다. 20곳 중 11곳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할 경우에만 비용을 지원했다. '이사비 지원' 다음으로 많았던 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료 지원(17곳ㆍ41.5%)이었는데,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가령, 경기도는 보증료를 지원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의 기준을 3억원 이내로 정했다. 지원금은 30만원 한도다. 경남 창원은 보증금 2억원 이하로 한정했다. 경북 영주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료를 청년 조례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법망을 만들었다.

긴급생계비 지원을 조례로 명시한 지자체는 10곳(24.4%)으로, 세번째로 많았다.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가 가장 많이 지원한 항목이 긴급복지(8월 기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긴급생계비 지원'은 더 많은 지자체가 신경 써야 할 조례로 보인다. 그다음으론 지방세 납부 연기(8곳ㆍ19.5%), 대출 이자 지원(4곳ㆍ9.6%), 소송수행경비 지원(3곳ㆍ7.3%), 새 주택 계약 시 중개수수료 지원(2곳ㆍ4.9%)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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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❷ 비경제적 지원 = 이번엔 비경제적 지원을 담은 조례를 살펴보자. 비경제적 지원은 비주택 지원 대상 포함, 예산 확보 의무, 의회 보고 의무화, 긴급지원주택, 매입 대책 수립 등 6가지였다.

이중 비주택을 지원 대상에 포함한 조례는 특히 의미가 있다. 비주택은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란 이유로 전세사기특별법에서 제외됐다가 첫번째 개정 때 포함됐다. 그만큼 법적 논란이 적지 않았다. 비주택 지원을 조례에 담은 지자체는 41곳 중 26곳(63.4%)이었다. 비경제적 지원 중 가장 많았는데, 몇몇 지자체는 건축물대장상 주택이 아닌 곳도 전세계약을 체결했다면 주택으로 간주했다.

"구청장 등 자치단체장이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을 조례에 명시한 지자체는 10곳(24.4%)이었다. 전세사기피해 지원과 실태 조사 등을 의회에 보고하도록 만든 조례는 7곳(17.1%)에서 만들었다. 조례의 유명무실화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아울러 긴급지원주택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든 지자체는 3곳(7.3%), 매입대책을 수립하도록 한 곳은 1곳(2.4%ㆍ경기도 이천시)이었다.

■분석❸ 지자체별 조례 = 마지막으로 지자체별 조례의 현황을 분석해보자. 서울 다음으로 전세사기피해 인정 건수가 많았던 지역은 경기도였다. 경기도는 도 조례와 함께 부천ㆍ고양ㆍ이천ㆍ과천ㆍ하남 총 5개 시가 조례를 제정했다. 경기도 지자체 조례 중 가장 많은 지원은 이사비 지원(경기도ㆍ부천ㆍ고양ㆍ과천ㆍ하남)이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료를 지원하는 곳은 3곳(부천ㆍ고양ㆍ하남)이었다. 비주택을 지원 대상에 넣은 지자체도 3곳(고양ㆍ과천ㆍ하남)이었다.

지자체장의 예산 확보 노력 명시(고양ㆍ하남), 긴급생계비 지원(경기도ㆍ과천), 지방세 납부 연기(고양ㆍ하남), 월세 지원(고양ㆍ하남), 의회 보고 의무화(고양ㆍ하남)를 조례에 명시한 곳은 각각 2곳이었다. 공공임대주택을 긴급지원주택으로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한 건 경기 과천 1곳이었다. 언급했듯 경기 이천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매입대책 수립을 조례에 포함했다.

경기도에 이어 전세사기 피해자가 많았던 대전의 조례를 보자. 대전에서 전세사기피해지원 조례를 제정한 건 대전광역시와 대전 서구ㆍ유성구였다. 서구와 유성구 모두 이사비와 긴급생계비를 지원했다. 다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료 지원이 조례에서 빠진 건 아쉬운 부분이다.

지역에서 세번째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많았던 곳은 인천이었는데, 여기선 인천광역시와 인천 미추홀구가 조례를 제정했다. 인천광역시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료, 이사비, 월세, 긴급생계비(1회), 대출이자를 지원했다.

미추홀구는 조례를 통해 지방세 납부를 연기해주고, 소송수행경비를 지원했다. 두 조례는 지자체장의 예산 확보 노력, 의회 보고도 의무화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제대로 지원하도록 준비부터 확인까지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문제는 전세사기특별법이 그렇듯 조례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란 점이다. 사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집'에 국한하지 않는다. 일부 피해자는 전세사기로 떠안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개인회생을 신청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몇몇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좀 더 폭넓은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회생법원 역시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2023년 10월 실무준칙의 내용을 바꿨다. 개인회생의 최소 변제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인데, 이 기간을 실무준칙 개정을 통해 다음과 같이 조정했다. "전세사기 피해로 지급불능 상태가 되거나 그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사람 중 전세사기피해자로 결정된 사람은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단축할 수 있다." 변제기간이 줄면 빚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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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회생에 묶인 전세사기피해자는 자칫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을 수 있다.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을 채용 부적격자로 분류하는 공기업과 금융회사가 적지 않아서다.

전세사기특별법을 개정하면서 '공무원 채용이 불가능한 파산신청자'의 대상에서 전세사기피해자는 예외로 뺐지만, 공기업과 금융회사는 손보지 못했다.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 중 73.9%가 2030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별법이든 조례든 '안전망'을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박효주 참여연대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전세사기피해자 중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은 여전히 일부 금융권이나 공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전세사기피해자가 직업을 선택할 때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 공무원처럼 예외를 적용할 법망이 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는 전세사기 문제가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지원의 폭과 분야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사기에서 발생한 간접적 충격까지 완화할 수 있는 법망이 필요하단 얘기다. 6개월마다 보완하기로 한 특별법, 지자체가 직접 개정할 수 있는 조례는 그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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