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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단독] “의원 뒤에서 열일 하더니”…요즘 판교에 출몰한다는 이 사람들 정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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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직의 다리’로 불리는 판교역 인근 공중 연결통로.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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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강도가 너무 높다보니 기회가 되면 일을 그만두고 사기업으로 옮겨가는 보좌진들이 많아요. 저도 억 단위의 연봉을 준다는 한 플랫폼 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A의원실 보과관)

서울 여의도에서 보좌관들의 ‘국회 탈출’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사들이 소위 ‘워라밸’로 불리는 일과 삶의 균형, 높은 연봉, 직업 안정성 등을 앞세워 국회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17일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실이 국회사무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9년~올해 9월) 국회 4급 이상 공무원 중 287명이 타 직종으로 이직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35명, 2020년 52명, 2021년 59명, 2022년 48명, 2023년 48명이 이직했고, 올해에도 1월부터 9월까지 45명이 국회를 떠나 사기업, 법무법인, 병원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중 가장 많은 국회 공무원이 새로 둥지를 튼 곳은 쿠팡이었다. 최근 6년간 총 7명이 쿠팡으로 이직을 했다. 카카오 관련 계열사로 이동한 국회 고위직도 6명에 달했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으로 범위를 넓히면 총 18명이 소위 ‘네카쿠배’라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등과 관련 계열사로 이직했다. 연도별로는 2020년 3명, 2021년 4명, 2022년 6명, 2023년 1명, 2024년 4명 등이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한 명당 4급인 보좌관 2명, 5급인 선임비서관 2명, 6·7·8·9급 비서관 각각 1명, 인턴 1명 등을 고용할 수 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국회 보좌직원은 총 2363명, 인턴은 272명으로 집계됐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보좌진 중 4급 보좌관보다는 5, 6급 비서관이 더 많이 이직하고 있기에 실제로는 플랫폼기업 등 민간으로의 이직자 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들의 플랫폼 기업행이 이어지는 것은 사기업과 상호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기업 이직 후 주로 기업의 대관 업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국회 인맥을 바탕으로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의 제·개정을 돕거나 업계 현장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국회의 권한이 갈수록 커지면서 여의도 풍향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 보좌진 출신 인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대국민 접점이 많이 국회의 관심이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앞다퉈 국회 출신 인력 영입에 나서고 있는 상횡이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에 대한 새로운 법안과 규제들이 생기는데, 이를 잘 방어하지 않으면 경영상 치명적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관련 분야에 경험이 많고 전문적 지식과 네트워크가 있는 분을 모셔 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휴식을 고려하는 소위 ‘워라밸’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된 것도 보좌진들의 기업행이 늘어난 것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보좌진의 공식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지만, 담당 의원실과 국회 일정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수석보좌관 이 모씨는 “국정감사, 선거 등 대형 이벤트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국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평소에도 휴일근무와 야간근무가 잦은 편이라 공무원임에도 워라밸을 지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담당 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정치 상황에 따라 직위를 내려놓는 경우 다른 의원실을 찾아 떠나야하는 직업의 불안정성도 보좌관들의 이직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좌진이 담당하는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공천을 받더라도 선거에 서 떨어질 수도 있다”며 “총선 등으로 정치판 물갈이가 있을 때마다 보좌진과 고위 공무원이 대량으로 교체되는데 그들에게 이런 상황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공무원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는다는 점도 장정이다.

국회 공무원 뿐 아니라 일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플랫폼 기업으로 이직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김현정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년~올해 8월) 전체 4급 이상 공무원 중 51명이 네카쿠배 및 관련계열사로 이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0년 1명, 2021년 13명, 2022년 18명, 2023년 7명, 2024년 12명 등이다. 대통령 비서실 관계자가 쿠팡 이사가 되고, 검사가 쿠팡 전무가 되고, 경감이 쿠팡 부장이 되는 식이다.

플랫폼사가 보좌진 및 고위 공무원 인사를 흡수하는 현상이 계속되면 국회, 정부의 인재 손실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현정 의원은 “공직의 사명감만으로 민간의 워라밸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라는 건 알지만, 인재 유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안타깝다”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해충돌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인재유출 방지를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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