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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東語西話] 인간은 개에게 의지하고 개는 인간에게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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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9월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에서 열린 반려견과 함께하는 선명상 축제를 찾은 반려인과 반려견이 합장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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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오대산에는 진고개가 있다. 원래 긴 고개였는데, 방언인 진고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길면서도 구불구불했다. 심한 굴곡과 급경사가 완만해질 무렵 ‘소금강’ 안내판이 보인다. 이율곡(1536~1584) 선생이 잠시 머물면서 남긴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에서 청학산은 금강산을 축소한 것 같다는 덕담을 한 후에 지역민들은 산 이름까지 변경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그냥 지나쳤다. 굽은 길이 곧은 길로 바뀌면서 안도감이 들 무렵 왼편 9시 방향으로 가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입구에는 시월 둘째 토요일 개산(開山) 25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작은 샛길인 싸리골길은 좁고도 길면서 완만한 오르막이다. 그 길 끝에 동식물 천도재(薦度齋)로 유명한 강릉 현덕사가 자리했다.

새 절을 창건하면서 동식물 천도재를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날개조차 제대로 자라지 못한 어린 제비를 장난 삼아 막대기로 살짝 건드렸는데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당혹감은 트라우마가 되었고 오래토록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천도재 첫 위패는 ‘망(亡) 합천제비 영가(靈駕)’였다. 그런 사례에 익숙지 않았는지라 주변에서 ‘별난 스님’으로 생각했다. 개인적인 작은 사연으로 시작되었지만 영향력이 점점 넓어지면서 지금은 갖가지 이유로 세상과 인연을 다한 동물 천도재로 확대되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주는 신뢰감과 사반세기에 걸친 역사적 전통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반려동물과 사별의 아픔 그리고 슬픔을 달래려고 전국에서 ‘원조’ 사찰을 찾아왔다.

의학용으로 희생된 실험동물을 위한 추모비는 더러 있었다.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박물관 마당에는 ‘실험동물 공양탑(供養塔)’이 있다. 이름은 탑이지만 130cm 정도 높이의 막대형 비석이다. 뒷면에는 건립 날짜 1922년 7월 15일을 새겼다.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마당에는 ‘동물 공양지비(供養之碑)’가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처음 세워진 이래 은평구 녹번동 그리고 현재의 위치까지 옮겨 다닌 이력을 가졌다. 1929년에 제작된 후 관계 기관 이동 역사와 함께한 비석이다. 만들고 이사했던 과정 자체에서 종사자들의 마음 빚이 그대로 읽힌다. 비석 앞에서 추모제를 올리는 전통도 유구하다.

수렵하며 살던 시대에 개는 동업자였다. 함께 사냥을 나가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수확물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양 떼를 몰고서 초원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에게도 개는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였다. 그때는 개와 사람의 역할이 동등했던 것이다. 개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람도 개에게 의지하면서 살았다. 그런 정서는 알게 모르게 후대로 이어지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기면서 동물 추모는 일상사가 되었다. 표에 예민한 정치인들은 개를 가축의 지위에서 제외하여 법적으로 보호받도록 조치했다. 물론 개보다는 개 주인을 의식한 것이긴 하다. 사업가는 새로운 시장 확장에 여념이 없다. 기존의 동물 출입 금지 구역도 동반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관광 사찰 역시 대표적인 동물 출입 금지 구역이지만 서서히 문이 열리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선명상 프로그램도 템플스테이 인기 품목으로 상승 중이다. 조주(趙州·778~897)선사가 오래전에 던진 ‘개도 인간과 똑같은 품성이 있느냐?’는 묵직한 화두를 다시금 살펴보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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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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