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인민군 2군단 지휘부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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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최전방 부대를 시찰하면서 서울 지도를 펼쳐 놓고 "대한민국은 적국"이라고 또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최근 들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헌법에 못 박고 남북 연결도로를 파괴한 이후에도 거친 행보를 이어가는 셈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를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까지 묶어 연일 주민들에게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선 "북한 내부의 체제 단속은 물론 임박한 미국 대선 상황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란 관측이 나온다.
18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전날 중·서부 전선을 관할하는 인민군 2군단 지휘부(사령부)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인민군 2군단은 지난 2015년 경기 파주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을 주도한 부대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지난 15일 경의·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사실을 거론하며 "우리 군대는 대한민국이 타국이며 명백한 적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7일 '경의선·동해선 도로 및 철도'를 완전폐쇄한 사실을 전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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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또 "이것은 단지 물리적 폐쇄의 의미를 넘어 세기를 이어온 서울과의 악연을 잘라 버린 것"이라면서 "부질없는 동족 의식과 통일이란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린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이어 "우리의 주권이 침해 당할 때는 우리의 물리력이 거침없이 사용될 수 있음을 알리는 마지막 선고"라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번 시찰에서 최근 최전방에 내린 '전투 대기 태세'와 관련해 관할 여단들의 준비 상태도 점검했다고 한다.
신문은 김정은이 지도 상단에 '서울'이라고 적힌 지도를 펼쳐놓고 간부들에게 지시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전체 지도가 노출이 안 되게 흐릿하게 처리했지만, 전문가들은 서울을 명시한 것으로 미뤄 "수도권 침투 작전에 관한 지시"인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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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헌법 전문, 공개 안 하는 이유는?
이같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최근 헌법 개정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앞서 북한은 김정은과 총참모부 담화 등을 통해 지난 7일 최고인민회의 전원회의 이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헌법에 반영했다는 암시를 풍겼다. 그러면서도 개정 헌법 전문을 대내외에 공표하진 않고 있다. 선대(김일성·김정일)부터 내려온 '민족·통일' 기조를 단번에 뒤집는 개헌을 북한 엘리트와 군부, 주민들이 즉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11일 '중대 성명'이라며 평양 무인기 침범 사태를 "주권 침해"로 규정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이런 대남 적개심을 이용해 김일성종합대학과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등 전국 청년·대학생 140만명에게 '입대 탄원'까지 받았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 적대 관계 설정과 영토 분리의 영구화·제도화에 대해 군인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내재화 단계를 충분히 거친 뒤 헌법 전문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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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사태' 놓고 김여정 담화 오락가락
북한이 무인기 사태를 대외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풀이도 있다. 북한이 관련 주장을 시작한 지 일주일 째 명확한 근거도 없이 한국에 대한 겁박만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무인기와 관련해 다섯 차례나 담화를 내면서 오락가락 행보도 보였다. 지난 17일 담화에선 "한국 군부 깡패들이 주범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했지만, 이튿날인 18일엔 "합동참모본부가 제대로 조사 규명하는지 지켜보자"며 한발 빼는 식이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시점상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무인기 사건을 과장하는 것일 수 있다"며 "'한반도는 전쟁 직전 상황'이란 식으로 긴장의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트럼프가 돌아오면 이를 협상 카드로 쓰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이 이번 최전방 시찰에서 '한·미 동맹'을 거론한 것도 미국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려스러운 안보 환경"이라며 "한·미 동맹의 성격이 변이된 조건은 우리 국가의 핵 억제력 강화의 정당성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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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매설, 방벽 구축 등 방어적 모습
정부 안에선 "북한이 자신들의 방어적·수세적인 입장을 가리기 위해 거친 언행을 앞세우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김정은의 '남북의 물리적 단절' 지시 이후 군사분계선(MDL) 인근, 남북 주요 도로 4곳의 축선에 지뢰를 매설하고 대전차 방벽을 구축하는 등 군사적 의미에서 사실상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도 같은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군 다수 인원이 지뢰 폭발로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군 당국이 18일 밝혔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북한군은 전선지역 일대 불모지 조성 및 지뢰 작업 중 여러 차례의 지뢰 폭발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DMZ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진은 전선지역에서 대전차 방벽 추정 구조물 설치 중인 북한군. 사진 합동참모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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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변수도 북한의 방어적 기조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러시아에 1만명의 병력과 지원 인력을 파병하는 동시에 컨테이너 최소 1만개 분량의 포탄 등 무기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남측과의 전면전은 물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국지적인 충돌도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김정은 입장에선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현금과 군사기술이전 등 실리를 챙기고, 내부 단속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남측과의 단절 작업을 서두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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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실기동 '호국훈련'에 미군 참가
이처럼 북한의 공세적 태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미는 대규모 야외 기동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18일 합동참모본부는 "오는 20일부터 내달 8일까지 육·해·공 실전 기동 훈련인 호국훈련을 진행한다"며 "이번 훈련은 지난해보다 20% 가량 규모를 확대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호국훈련은 한국군 주도 훈련이지만, 매년 주한미군 전력도 참여하고 있다. 군이 이를 강조한 건 '한·미 연합훈련'이란 점을 북측에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훈련에선 가자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쟁 양상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의 로켓·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 기습 침투, 무인기(드론) 공격 등 복합적인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로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육군 1군단은 지난 17일 오후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동해상 가상 표적을 향해 130㎜ 로켓탄 '천무'의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천무는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의 장사정포 등 도발 원점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꼽힌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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