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이미 기울었고 신분제도 허울뿐인데 경남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과 향반, 노비, 소작인들은 주종 관계로 얽혀 있다. 바로 땅 때문이다. 땅을 가진 참판댁은 그 사실만으로 마나님이고 소작인들은 땅을 부쳐 먹어야만 소유주에게 떼주고 남은 곡식을 얻어 산다. 그때나 지금이나 땅은 인간의 경제적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뜨거운 명제를 대략 600명의 등장인물로 그려낸 박경리는 자신의 호흡만큼은 길게 가져갔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토지'를 썼다. 이 기간 외부와의 접촉은 아예 끊다시피 했다. 저자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토지'는 올해 완간 30주년을 맞았다. 이달 초 정부의 세종문화상 수상자 중 한 팀이 '토지' 20권을 일본어로 번역해 내놓은 현지 구온출판사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굴곡진 현대사를 주무대로 삼은 소설이 일본에서 완역됐다는 사실, 그 일본 출판사에 우리의 세종문화상을 수여한 것이다. 문학사적으로도 의미 있지만 국제 교류 측면에서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여파가 꽤 오래갈 것 같다. 문단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상 뒤엔 번역에 공을 들인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가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생존한 다른 수작들을 더 열심히 번역 출간해 또 다른 노벨상을 노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노벨상은 결과일 뿐 결코 목표라고 할 수 없다.
한강의 수상은 우리 현대문학사 거장들이 다져둔 탄탄한 땅 위에 피어난 꽃이다. '토지'처럼 이미 명작 고전이 돼버린 작품들이 꾸준히 번역돼 국경을 넘어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우리의 문학 토양이 이렇게 비옥해지고 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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