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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밀착카메라] 사람 떠나고 비둘기가 산다…부산까지 덮친 '빈집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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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언젠가부터 지방에는 '빈집 전염병'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마을에 빈집이 하나 생기면 전염병 퍼지듯 빈집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단 건데,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 부산에서도 최근 이 '빈집 전염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밀착카메라 정희윤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기자]

깨진 유리창,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발코니, 건물 외벽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

55년 전에 지어진 부산의 한 아파트입니다.

총 240세대로 알려져 있는데, 두 개 동은 오래전 폐쇄됐습니다.

출입이 가능한 동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널려있는 빨래, 나물들.

누군가 살고 있었습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두드려봤습니다.

[실례합니다. 혹시 누구 계실까요?]

문이 열리고, 41년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여든다섯살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 추억 속 이 아파트는 북적북적했습니다.

[41년 차 주민 : (이 동에만) 60세대가 막 와글와글했어요. 그때는 진짜… (지금은) 다 떠나갔지.]

이젠 딱 3가구만 살고 있습니다.

[41년 차 주민 : (이웃들이) 떠나갈 때마다 마음이 안 좋지 뭐. 안 좋고 섭섭하고 참 그래. 그랬는데 뭐 어쩔 수 없잖아…]

돈도, 일자리도,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상황.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도 '지방 소멸'의 흉터가 곪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 영도구 같은 구도심이 가장 취약합니다.

[41년 차 주민 : 자기네가 이제 살기 힘드니까 (떠나지.) (동네에) 사람이 없잖아… 콩나물 1천원어치 사러 가려고 해도 밖에 버스 타고 나가야 하고… 왜냐하면 여기 앞에 마트가 있었는데 그것도 다 없어지고…]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만 남은 듯 보였습니다.

[41년 차 주민 : 지금 나이가 많고 몸이 안 좋으니까…]

이 층에는 원래 12세대가 살았는데요. 지금은 보시다시피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이 집 같은 경우에는 대문이 아예 없어서 사실상 외부인의 침입이 굉장히 쉬운 상태인데요.

안에 들어가 보시면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깨진 유리창 같은 것도 있어서 굉장히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흉가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41년 차 주민 : 공포체험 한다고 와가지고 돌멩이 던져서 와장창 유리가 다 깨지고 그러는 바람에 이제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간이 두근두근해요.]

찻길 하나만 건너면 유명 관광지인 '흰여울마을' 이 나오지만, 이곳 역시 낮에만 잠시 북적일 뿐입니다.

[한은주/인근 미용실 사장 : (아파트가) 일단 지금은 비둘기 집이에요. 유리 깨진 집에 비둘기들이 들어가서 살아요. 제가 간판 불을 끄면 동네가 깜깜해요. 그래서 제가 간판 불을 24시간 켜놔요. 밤에는 무서워요.]

해가 지고 나서 이 아파트 앞에 다시 와 봤는데요.

화려한 불빛들이 가득한 저 반대편 동네와는 달리, 이곳은 이 가로등만이 이곳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파트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변 주택가를 둘러봤지만, 오가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빈집이 늘어가며 마을 전체가 텅 비어가는 이른바 '빈집 전염병'의 현주소입니다.

[여기도 뭔가 사람의 발길이 안 닿은 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네요. 수풀이 엄청 무성하게 자라있고…어머 고양이다.]

행정기관의 손길도 자주 닿지 않고 있습니다.

3년 전 복지센터에서 붙여놓은 안내문. 이게 가장 최근의 흔적입니다.

학교 근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은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주택가입니다.

저렇게 공·폐가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요.

이곳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불과 100미터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사람들이 살다가 떠나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어린이들의 통학로까지 범죄에 노출되지 않을지, 주민들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근 학교 안전 지킴이 : 여기도 이제 그런 것 때문에 항상 여기 입구에서 아이들 등교, 하교 때 항상 지켜보고 있고요.]

빈집이 계속 생겨나면서 지역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남진/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빈집이 하나 있으면 덜 문제인데, 연달아 두 집이 빈집이고 한 집 건너서 또 빈집이다. 그러면 이렇게 집단화가 되잖아요. 거기서 뭐 우리가 생각하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또 반윤리적인 행위도 거기서 일어날 수도 있고…]

수십 년 산 사람은 다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 생기를 잃은 이 동네.

지방이 소멸하고 있는 이 서울공화국에 퍼진 빈집 감염병은 이곳이 보여주듯 심각 단계입니다.

[작가 유승민 / VJ 박태용 / 영상편집 김영선 / 취재지원 박찬영]

정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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