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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끝내 얻지 못한 대북 저작권 송금자료 [초선의원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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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달 19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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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또 사고를 쳤다. 지난달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한반도 두 국가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임수경을 북한으로 밀입국시킨 전력이 있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의 대표적인 통일론자였다. 그랬던 그가 급격히 태세를 전환하며 통일하지 말고 대한민국과 북한을 '평화적 협력관계 속 두 국가'로 두자고 한다. 이 발언으로 임 전 실장은 오랜만에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평화적 협력관계 속 두 국가'라니,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은 틀렸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평화적 교류협력'하는 상태로 유지하자는 주장인데, ‘북한과의 평화적 교류협력’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북한이 정상 국가로 인정받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포기가 선결 조건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3자 대상 제재(secondary boycott)까지 더해진다면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북한과 교류를 꺼려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김씨 왕조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 자국민의 충성을 이끌어 낼 그 어떤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유가 없고, 문화적 매력도 없는 데다가, 세계 최빈국이다. 핵무기를 지키고 있는 것만이 북한 체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북한의 상태는 '미라'처럼 철저히 밀폐된 상태로 겨우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외국과 접촉하는 순간 체제는 순식간에 붕괴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핵무기는 북한의 존립 근거이고 그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다른 국가들과의 평화적 공존과 경제적 교류협력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과 교류협력'은 애초에 불가능한 명제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인데도, 통일의 선구자였던 스스로의 인생을 몽땅 부정하면서까지 임 전 실장이 두 국가론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경제적으로도 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은 2004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창설을 주도했고, 이후 대부분 기간 해당 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했다. 경문협은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북한의 저작권 이용료 납부분을 징수하고 이를 북한으로 송금하는 일을 한다.

국정감사 중 입수한 북한 저작권사무국과의 합의서를 보면, '북측 저작권사무국, 민족화해협력위원회와 남측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북측 저작물의 남측에서의 사용에 대한 원활한 교류를 위하여 지속적인 협력을 진행하기로 한다'고 쓰여 있다. 이 합의에 따라 경문협은 북한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북한의 저작권 사용료를 걷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경문협이 ‘셀프’로 챙긴 수수료는 무려 전체 저작권료의 20~3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아무도 정확한 수수료율과 경문협의 운영 내역을 알지 못하고 있다.

국정감사에 임하고 있는 국회의원조차 예외는 아니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통일부에 경문협과 관련해 내가 요구한 자료는 국내 언론사가 지급하는 저작권료 기준, 북측과의 협의 내용 및 회의록, 경문협 경비 및 활동비 내역, 수익사업 내역, 연구용역 보고서, 기부금품 및 사용명세 보고서, 저작권 합의서, 저작권료 전달 후 받은 영수증 등이었다. 하지만 통일부는 경문협이 민법에 따른 통일부 소관 비영리 법인이라며, 자료가 없거나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 와중에 경문협은 납북 피해자나 국군 포로들의 추심 청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으며, 지난해 말 경문협은 쌓인 저작권료 전달을 위해 북한 주민 접촉시도까지 했다.

경문협은 북한과의 저작권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졌고, 남북 관계는 한반도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개인의 정치적 목적이나 단체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국가적 차원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북한의 저작권사무국이 경문협이라는 남한의 민간단체에 저작권을 위임해줬다는 이유로, 통일부는 오히려 비밀을 지켜주기 급급했다. 통일부 소관 비영리 법인에 대한 검사·감독 권한이 법률로 명시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방만한 관리가 지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문협을 만든 것은 아닌가.

결국 임 전 실장은 북한이 존재해야만 북한에 돈을 건넬 경문협 운영 명분이 생기고, 무소불위의 경문협이 운영되는 동안 스스로도 사익을 챙기는 셈이다. '한반도 두 국가론' 주장의 배경이 뭔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임 전 실장은 '두 국가론'으로 정치적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생각에 집착한다면 운동권의 썩은 붕대에서 벗어난 새로운 출발은 요원할 뿐이다.
한국일보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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