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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커피 로스팅 속의 '호리천리' [休·味·樂(휴·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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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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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커피콩 겉모습(왼쪽)과 단면. 콩의 작고 단단한, 다공질 구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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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은 열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맛과 형태로 변신한다. 특히 ‘볶는’ 음식인 커피는 열을 통해 더 심오한 변화를 겪는다. 로스팅이 잘 돼야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은 완성된다.

커피가 잘 볶아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온도와 수분 감소가 필수다. 로스팅이 진행될수록 커피콩 온도는 상승해 180~230℃까지 도달한다. 땅콩이나 카카오빈을 볶을 때 최고 온도가 150℃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커피는 이례적으로 높은 열을 사용하는 셈이다. 9~12%이던 생두 내 수분도 로스팅 후 2% 아래로 감소한다. 즉 작지만 단단한 다공질 구조를 가진 생두를 고온에서 볶을 때 어떤 열을 사용해 수분을 날리는지에 따라 커피 맛의 결이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콩 속 유기산과 당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일으켜 복합적인 유기 화합물을 만들고, 이렇게 생성된 성분들이 커피의 향미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열’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 과정을 일컫는 ‘전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열원에 가열된 물체를 통해 열이 전달되는 전도열, 냄비에 물을 넣고 가열할 때 액체나 기체를 통해 이동하는 열을 대류열, 그리고 생두를 넣고 돌리는 드럼(가마)이 열을 충분히 흡수한 후 주변으로 방출(복사)하는 복사열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로스팅 기계는 예열해 복사열을 지니게 한 후 로스팅하며, 대류열과 전도열을 적절히 활용해 맛의 결을 완성한다.

‘직화식’은 수많은 구멍이 뚫린 드럼을 가열하면서, 고온의 대류열(열풍)을 구멍으로 천천히 유입시키고, 달궈진 드럼면의 전도열이 보조가 돼 콩을 익히는 방식이다. 흔히 불꽃이 콩에 닿는 것으로 알지만, 회전하는 드럼 안에는 생두가 일으키는 회전 풍이 있으므로 불꽃이 침입하지 못한다. 세심한 불 조절을 요하지만 완성된 커피 맛은 매우 클린하면서도 전도열로 얻은 은은한 단맛이 가미된다. ‘반열풍식’은 직화식과 달리 드럼 표면에 구멍이 없고, 드럼 뒷면에 대류열을 유입시키기 위한 타공이 돼 있다. 가열된 드럼의 전도열 중심으로 볶아지기 때문에 특유의 깊은 단맛이 만들어지며, 대류열은 보조역이 된다. 이렇듯 복사열의 안정성 안에서 대류열과 전도열이 적절히 섞여 다양한 결의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호리천리'(毫釐千里·티끌 하나 차이가 천리 차이를 낳음)라는 말이 있다. 커피 로스팅이 그렇다. 온도, 시간, 열풍량 조절에서 미세하게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같은 생두가 전혀 다른 결과물로 재탄생한다. 그런 세심한 작업에 인생을 걸고, 오늘도 정성으로 커피를 볶고 있는 로스터리 카페를 발견하시기를. 당신의 가을이 더 향기롭기를.
한국일보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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