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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일)

"하마스 수장, 현금∙사탕 들고 죽었다"…이스라엘, 영웅화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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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도 테헤란에 내걸린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의 초상.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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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사살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죽음과 관련된 정보를 속속 공개하고 있다. 신와르가 최후 영상 등을 통해 '영웅' 대접하는 분위기가 일자, 이를 차단하려는 조치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 신와르의 사망 소식을 접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안팎의 분위기를 보도했다. 매체는 “수개월간 이스라엘은 신와르가 가자지구의 안전한 땅굴에 숨어 지낸다고 선전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전투복 차림의 그가 한 손에 부상을 입은 채 다른 손으로 나무 토막을 던지며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목격했다”고 전했다.

가자 주민 무함마드 소베는 “하마스에 불만을 숨은 사람조차 신와르가 땅굴에 숨지 않고 전투 중에 숨졌다는 점에 슬퍼하고 있다”고 FT에 말했다.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하마스는 과격 노선으로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도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공개한 동영상이 이스라엘에 맞선 신와르의 최후의 저항으로 비치면서 비난 여론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스라엘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도 “(신와르의 마지막은) 가자 지구의 어떤 아버지들에겐 ‘영웅적 죽음’으로 비쳤다”고 지적하며, “신와르 최후의 영상을 30번이나 봤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지만, 신와르의 죽음은 자랑스럽다”는 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란도 “마지막까지 영웅적으로 싸웠다”(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했다”(압바스 아락치 외교부 장관)며 신와르의 죽음에 찬사를 바쳤다.

이스라엘도 18일부터 신와르와 관련한 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그 중엔 4만 세켈(약 1500만원)의 현금과 멘토스 사탕 등 신와르의 소지품 사진도 들어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관련 기사에 “앞으로 멘토스를 사먹지 않겠다”. “(멘토스는) 구호물자에서 훔치면 된다”며 신와르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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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와르가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 공격 직전 피난하던 모습을 담은 영상.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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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스라엘 측은 신와르가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에 기습공격을 하기 전날 가족들을 데리고 땅굴로 피신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6~7일 촬영된 것으로 나오는 3분9초짜리 영상에서는 신와르와 여성 한 명, 어린이 2명이 나와 땅굴에서 생수통과 식료품 등을 옮기는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의 아랍어 대변인인 아비차이 아드라이 중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신와르의 아내가 3만2000달러(약 4400만원) 상당의 명품가방인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피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은색 핸드백을 들고 있는 신와르의 아내 모습이 찍힌 땅굴 방범카메라 영상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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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의 아랍어 대변인인 아비차이 아드라이 중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신와르의 아내가 3만2000달러(약 4400만원) 상당의 명품가방인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피신했다고 주장했다. 사진 X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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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라이 중령은 “신와르의 아내는 지난해 10월 6일 버킨백을 들고 남편과 함께 땅굴로 들어간 것인가”라며 “가자지구 주민들은 텐트나 생필품을 살 돈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스라엘 측은 손가락이 잘린 신와르 시신 사진을 인쇄해 가자지구 남부에 살포하기도 했다. 전단지엔 아랍어로 “야히야 신와르는 당신들의 삶을 망쳤다. 신와르는 어두운 땅굴에 숨어 있다가 공포에 질려 도망치던 중 제거됐다”고 적혀있다.

이스라엘의 집요한 추격전도 서방 언론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지난 8월부터 신와르가 가자지구의 탈 알술탄에 있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얼굴을 가리고 이동하거나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첩보가 이스라엘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탈 알술탄의 한 땅굴에서 확보한 소변 샘플에서 신와르의 DNA를 검출해냈고,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순찰과 매복을 강화해 지난 16일 신와르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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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히야 신와르의 생전 소지품. 이스라엘 와이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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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순찰중이던 이스라엘군과 마주친 신와르는 인근 건물로 달아났지만 저격수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았다. 신와르의 시신을 부검한 이스라엘 국립법의학센터의 수석 병리학자인 첸 쿠겔 박사는 CNN에 “직접 사인은 머리에 입은 총상”이라며 “16일 늦은 오후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NYT는 미국도 이스라엘군이 신와르에 대한 수색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미국의 특수부대원과 정보요원들로 구성된 일명 ‘융합센터’(Fusion Cells·정보수집과 분석을 위한 정부 내 여러 기관의 협력체)가 가자전쟁 발발 직후부터 신와르 등 하마스 지도부 추적을 지원해왔다는 것이다. ‘하늘의 암살자’로 불리는 미 무인 공격기 MQ-9 리퍼도 최소 6대가 동원돼 인질 위치를 파악하고 생명 징후를 모니터링하며 이스라엘군에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신와르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심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자칫 신와르의 유해가 묻힌 곳이 ‘성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존 알터만 국장은 “이스라엘은 (신와르의 매장지가) 숭배 받지 않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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