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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화교 여성과 불륜 몰아갔다" 블랙요원 정구왕 北납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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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정구왕(65) 예비역 중령은 1998년 3월 13일 대한민국 대북 공작 역사에서 초유의 일로 기록된 ‘CKW사건’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딴 CKW사건은 북·중 접경지역 단둥(丹東)에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 요원으로 활동 중이던 정구왕이 북한의 공작요원들에 의해 평양으로 납치됐다가 살아 돌아온 사건입니다.

정구왕은 지난 8월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취재팀을 찾았습니다. 당시 취재팀은 남파공작원 김동식씨에 이어 정보사 출신 대북 공작장교 정규필 예비역 대령의 14년 공작 인생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김동식·정규필씨의 증언을 읽으면서 25년 동안 가슴에 담아온 비밀을 공개할 용기를 얻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보사는 대북(對北) 군사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할부대 입니다. 정보사 공작관이던 정구왕은 사업가로 신분을 위장하고 중국에 투입돼 비밀작전을 수행한 군인이었습니다. 정보사-흑색 공작관-북한 피랍-생환-강제 전역이란 굴곡진 삶의 궤적은 남북 분단의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합니다.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30)입니다. 탐사팀은 ‘제1부-공화국 영웅 김동식의 인생유전’, ‘제2부-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에 이어 ‘제2부-2-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지만 버림받은 공작관의 운명을 추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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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2〉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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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지난 12일 서울 숭례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채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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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납치극은 1998년 3월 13일 금요일 오후 10시쯤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시내 위안바오(元寶)구 마이커(麥克)소구 2동 502호에서 시작됐다. 정구왕이 숙소 겸 사무실로 쓰던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정구왕은 1년 반 전 ‘고려인삼세영산업 단둥지사장’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으로 밀파됐다. 북·중 접경지에서 대북 정보 수집과 공작 수행이 임무였다.

그날 정구왕은 장세영(당시 30세)이란 중국 동포와 함께 있었다. 장세영은 96년 10월부터 공작원(Agent)으로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이던 휴민트(인간정보)였다.

" 형님, 그만 가볼게요. "

장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 순간이었다. 문밖에 대기하던 5~6명의 괴한이 납입했다. 권총과 몽둥이를 든 괴한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공수여단 등에서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정구왕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권총 손잡이로 머리통을 가격당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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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북한 괴한들을 정구왕의 자택으로 이끈 장세영. 정구왕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사진 뒤에 신상 정보와 '와신상담' '나를 죽였으니 이제 니놈 차례다'라는 글을 적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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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들은 정구왕을 토요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렁크에 눕혀 태웠다. 비포장도로를 5~6시간쯤 달렸다. 어디선가 주민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북한말이었다. 차 밖으로 ‘박천’이라고 쓴 한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매서운 눈을 가진 북한 보위부 산하 반탐(反探·대간첩 업무)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취조에 나섰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들끼리 ‘과장’ ‘부장’이라고 불렀다.

" 이름은? "

" 정병준. "

" 허튼수작 말고, 똑바로 말하라! "

그들은 정구왕의 정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정구왕의 숙소에서 탈취해 온 그의 수첩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인적 사항과 업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구왕은 억류가 장기화하자 북한을 탈출할 궁리를 짜냈다. 피랍 당시 스스로 숨을 끊어야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북한은 그를 처형하지도 전향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북한 반탐 조직에 제안했다.

" 나를 남한으로 돌려보내 주라. 당신들을 위해서 일하겠다. 나도 장군으로 승진도 하고 성공하고 싶다. 당신들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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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1화 - “북한, 25년 전 날 납치했다” 전설의 블랙요원이 나타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9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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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서울 모처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정구왕 당시 정보사 소령. 사진 정구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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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스파이. 국군정보사 소속 대북공작관 정구왕 중령은 운명의 기로에 섰다. 1998년 3월 13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신분을 숨긴 채 흑색(비밀) 첩보요원으로 활동하다 북한에 납치된 정구왕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북한을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24시간 철저히 감시당하는 처지에서 암담했다.

그렇다고 조국과 가족을 등진 반역자가 되어 북한에 눌러앉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중스파이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짜 변절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덥석 물면 가능한 절박한 도박이었다.

역용(逆用)공작. 적의 스파이를 포섭해 우리 편을 돕는 이중스파이로 만드는 활동이다. 적의 기밀을 빼내거나 역(逆)정보를 흘려 혼란시키는 데 유용하다. 북한은 정구왕을 역용공작에 활용하려는 속셈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북한은 처음부터 정구왕을 납치했지만 예상치 않은 ‘호의’를 베풀었다. 처형은커녕 고문이나 구타 등 가혹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전향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세뇌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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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정신적인 고통은 더 심해졌다. “미인계의 덫에 걸린 개인의 일탈과 비리 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게 남한 정보사의 분위기”라는 반탐과장의 전언을 다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랍 한 달이 지나도록 자신에 대한 석방이나 구조 노력이 들려오지 않았다. 절망감과 배신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끓어올랐다.

창밖으로 목련에서 꽃망울이 터져 나올 때였다. ‘부장’이란 사람이 방문했다. 카키색 인민복 차림인 왜소한 노인이었다. 금테 안경 뒤로 보이는 눈빛이 살아 있었다. 정구왕의 전향 의사를 떠보려는 듯 말을 이었다.

" 당신도 남조선 사회에서 노동자 집안 출신이고, 그 사회에 적응하고 살기 위해 군에도 간 것인데 굳이 당신만 탓할 일인가? 우린 당신을 탓하지 않는다. 민족 통일은 멀지 않았다. 우린 그 뜨거운 희망을 가지고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산다. 이게 우리 인민의 생각이다.(반탐부장) "

" 도와주시오. 군인으로 마지막 가는 길인 만큼 명예롭게 보내주시오. 총살로 날 처리해 주시오.(정구왕) "

하루는 사진사가 찾아왔다. 정구왕의 전신과 좌우, 측면 모습을 모두 찍었다. ‘북한이 망하지 않는 한 북한 정부에 내 기록이 공화국의 범법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씁쓸함이 스쳐갔다. 5월 하순, 반탐과장이 오더니 “가볼 만한 곳에 관광을 계획하고 있으니 머리도 깎고 양복 채촌(採寸‧몸 치수 측정)도 하라”고 했다. 체제 선전을 통해 자발적인 전향을 유도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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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왕(왼쪽)이 지난 12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무실 근처에서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취재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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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北납치 정구왕 “날 총살하라”…고문 협박에도 숨긴 1가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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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1996~1998년 숙소로 썼던 중국 단둥의 사무실 내에서 앉아 있다. 이곳에서 1998년 3월 피습을 당해 북한으로 납치됐다. 사진 정구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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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나간다. 준비하시라. "

1998년 10월 18일 일요일 오전. 북한 보위부 소속 반탐(反探)과장은 건조한 말투로 툭 던졌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밥과 된장국, 양배추로 만든 겉절이로 아침식사를 마친 직후였다. 국군정보사 소속 대북공작관 정구왕 중령은 귀를 의심했다. 그해 3월 중국 단둥(丹東) 자신의 거처에서 북한의 정보기관 요원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납치돼 평양으로 끌려와 8개월째 억류된 상태였다. “나간다”는 말은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귀환, 믿어지지 않았다. 피랍된 이후 북한에서 처형 당하거나, 강제노동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무기력한 전향자로 여생을 마칠 것이라며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뜻밖의 통보에 숨이 멈출 정도의 설렘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살아서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혹시라도 일이 틀어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정구왕을 혼란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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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정구왕 일행이 탄 수송기는 평양을 이륙해 380㎞ 정도를 날아 백두산 인근의 양강도 삼지연공항에 착륙, 그곳에서 목재를 싣고 다시 110㎞를 비행해 함경북도 어랑비행장에 내린다. 여기서 정구왕 일행은 승용차로 110㎞를 더 이동해 함경북도 회령에 도착하는 계획이었다. 평양-삼지연-어랑-회령까지 총 600㎞를 하늘 길과 땅 길을 강행하는 일정이다.

10월 19일 월요일, 귀환 시도 둘째 날.

정구왕과 반탐과장 일행이 탄 승용차가 회령 국경검문소(출입국관리사무소) 바리케이드 앞에 멈췄다. 차 안에서 중국의 입국 허가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불안·초조·긴장 등 온갖 상념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요동쳤다.

" 관세음보살! "

불교 신자인 정구왕은 마음속으로 염불을 외우며 부처님의 자비를 애타게 구했다. 만에 하나라도 귀환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해 평양으로 복귀하라는 불상사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검문소 직원이 차로 오더니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반탐과장이 돌아오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에서 초조함 속에 대기한 한 시간은 정구왕의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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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왕이 1995년 중국 연변대학에서 단기 중국어 연수를 받았을 당시. 북 ·중 접경지역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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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위조여권 평양 탈출극 짰다…정구왕 풀어준 북한의 속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449



〈제2부-1〉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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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필 예비역 대령이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호림부대 부대원 이름이 적힌 충혼탑에 참배했다. 유해가 없어 이름이 적힌 위패만 있다. 현역 시절 입던 예복을 착용하고 촬영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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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은 공작장교였다. 남북 스파이전쟁의 최일선 중국에서 대북공작원으로 장기간 활약했다. 육사와 정보사 HID(북파공작 부대)를 거친 그는 흑색과 백색을 모두 경험한 엘리트 공작원이었다.

그의 시련은 2019년 3월 31일 대령 예편한 직후 시작됐다. 문재인 정권 시절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정규필이 적국에 군사기밀을 팔아먹은 ‘이중간첩’일 수 있다는 반역적 혐의였다. 그는 호소했다.

" 제가 간첩이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간첩사건이 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였다면 할복으로 제 결백을 밝히겠다는 처절한 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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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필 대령이 2010~2013년 주중 한국대사관 근무 당시 찍은 사진들. 북한 측 인사와 류우익 통일부 장관,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이 보인다. 사진 정규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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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군사기밀 누설’ 의혹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적어도 이중간첩의 누명은 벗었다. 그러나 압수수색된 그의 개인 컴퓨터 안에 남아 있던 26건의 2, 3급 군사기밀이 문제가 됐다. 군사기밀을 '탐지·수집·점유'한 혐의가 인정돼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정규필은 재판에서 “국정원의 별건·표적 수사”를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정보 라인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조작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정규필은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북파 임무 부대) 훈련과 대북공작원 경력을 거친 육사 출신의 최정예 공작장교였다. 해외 첩보와 기밀 수집을 임무로 하는 정보사에 소속된 공적 존재인 동시에 비밀 요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 비밀 핫라인 구축, 남북 고위통일당국자 회담, 중국에 체포됐던 ‘강철서신’ 김영환의 석방 협상 등 역사적 사건에 은밀히 개입했다.

2년간의 HID 팀장을 마치고 정보사 예하 서울 ‘남산부대’로 옮겼다. 92년 8월 한·중 수교 이듬해였다. 정규필은 북한과 인접한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성도인 선양(瀋陽)을 눈여겨봤다. 당시에 북한 영사관이 있던 선양은 북한의 대남공작 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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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주중 한국 대사관 임기를 마친 정규필 대령(왼쪽)을 중국 북한 식당에서 환송해 주는 북한 대사관 직원(오른쪽). 사진 정규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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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 선양에 공장을 짓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육군 현역 대위라는 신분을 감추고 위장 취업해 선양으로 나가는 방법을 모색했으나 무산됐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공작 활동에 유리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친구로부터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직원 2명의 ‘만철소재’라는 오퍼상을 소개받았다. 제대 군인으로 위장하고 사업을 제안했다.

" 선양에 지사를 만들어 보자. 월급은 필요 없고, 사무실 유지비만 대면 된다. "

공작원 삶에 적응해 가던 97년 초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이 터졌다. 황장엽은 그해 2월 12일 한국 베이징 총영사관으로 피신한 뒤 망명을 전격적으로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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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황장엽 망명 소식은 선양에도 곧바로 알려졌다. 황장엽 암살조가 급파됐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당시 서로 집을 왕래할 정도로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던 60대 조선족 중국인 사업가가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선양 북한영사관에 김정일 매제라는 북한 고위 인사가 왔다. 북에서 황장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한다. 내일 그 매제와 한잔하기로 했는데, 무슨 얘기를 해주면 좋을까?

고양이가 생선을 보면 눈이 달라진다. 정규필에게 공작원의 본능이 발동했다. HID에서 배운 ‘적기가’ 가사가 날벼락처럼 머리를 번뜩 스쳐갔다.

" 한번 배신자는 돌아와도 또 배신한다. 황장엽이 암살되든, 자연사하든 북의 소행으로 의심받을 것이 뻔하다. 북한의 체면을 살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라는 북한의 적기가가 있다고 들었다. 황장엽에게 배신자, 쓸모없는 쓰레기로 덮어씌우면 좋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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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망명 뒤 북한의 첫 입장을 보도한 중앙일보 1997년 2월 19일자 1면. 북한중앙방송은 전날 “비겁한 자들은 갈라면(갈테면) 가라”고 밝히며 황 비서의 망명을 허용할 뜻이 있음을 알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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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망명, 내가 수습했다”…법정에 선 비운의 공작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3861

■ 더중앙플러스 -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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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2〉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

① “북한, 25년 전 날 납치했다” 전설의 블랙요원이 나타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9673

② 北납치 정구왕 “날 총살하라”…고문 협박에도 숨긴 1가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387

③ 위조여권 평양 탈출극 짰다…정구왕 풀어준 북한의 속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449





〈제2부〉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

① “황장엽 망명, 내가 수습했다”…법정에 선 비운의 공작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3861

② 31쪽 공소장 다 뒤져봤다…수미테리 홀린 유혹 실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479

③ “금창리 핵시설” 한미 낚였다…北 ‘비닐봉투 역공작’ 전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7190

④ “야동 5만달러어치 구해달라” 북한군 중좌의 황당한 연락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8821

⑤ “북한 수중 자살특공대 준비” 첩보 6개월뒤, 천안함 터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0366

⑥ 임태희·류우익 사인한 명함…평양행 티켓, 3번 무산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1794

⑦ 정규필 “난 이중간첩 아니다”…37년 공작원의 5가지 반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239

〈제1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① “동무는 남조선 혁명하시오”...18세 김동식, 인간병기 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198

② “혁명적 자폭” 세뇌된 김동식…폭파범 김현희도 동문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7583

③ 9년 갇힌 채 적구화·밀봉 훈련…평양 간첩, 서울 사람이 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92

④ 74세 할머니 간첩, 이선실…포섭 타깃은 김부겸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0769

⑤ “밤 12시 평양방송 들으시오” 김부겸 허탕뒤 포섭한 ‘H선생’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2409

⑥ 브래지어 싸들고 잠수정 탔다…‘할머니 간첩’ 월북 때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4108

⑦ 공작조 10팀이 남한 누볐다…품성까지 적힌 ‘포섭 리스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5606

⑧ 北도 포섭 1순위는 SKY 출신…간첩 만난 미래 장관·의원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227

⑨ 대선 2년 전 “김대중 될 거다”…北, 고은 포섭 지령 내린 까닭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8837

⑩ 경찰관 2명 쏜 남파간첩, 29년 만에 용서 구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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