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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실손 청구 간소화' D-4…환자 불편에도 병원급 참여 40%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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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25일부터 시행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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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운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하기 위한 제도가 25일부터 시행되지만, 병원급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가 병원에서 직접 서류를 떼야 하는 불편이 계속될 거란 지적에도 병원들은 여전히 전산 시스템 연계에 소극적인 편이다. 또 다른 변수로 꼽힌 보험사·EMR(전자의무기록) 업체 간 비용 협의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병원들의 참여 속도가 제도 안착의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실손 청구 간소화는 의료기관이 환자의 의료비 서류 등을 전송 대행 기관인 보험개발원을 통해 각 보험사에 전산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10월 보험업법 개정을 거쳐 오는 25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보건소 등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내년 10월부턴 동네 의원·약국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지금은 실손 가입자가 병원에서 일일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내야 하지만, 앞으론 '실손 24' 포털·앱을 통해 '원스톱' 서류 전송 요청, 보험금 청구 등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서류 발급·제출 같은 수고로움 때문에 보험금을 타는 걸 포기한 소비자가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8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실손 소비자 조사에선 37.5%가 보험금 청구 포기 경험이 있었다.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실손 가입자가 청구하지 않은 보험금은 2022년 2512억원, 2023년 3211억원 등으로 추정된다.

실손 청구 간소화가 이뤄지려면 각 병원의 전산 시스템 연계가 필수다. 하지만 시행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병원급을 중심으로 참여율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병원급(병상 수 30개 이상~100개 미만)은 총 3857곳 중 40.4%(1559곳)만 청구 간소화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8일 기준). 이들 병원 참여도는 상대적으로 큰 규모인 상급종합병원(100%)·종합병원(76.1%)보다 훨씬 떨어진다. 시스템 구축을 담당하는 EMR 업체와 보험사 간의 개발·확산비 이견은 양측 협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봉합됐지만, 가장 중요한 병원의 참여 결정이 늦어지면서 '개문발차'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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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개요. 자료 보험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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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병원에선 여전히 참여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A 병원장은 "귀찮은 일만 늘고, 전산 시스템 오류 등이 걱정돼 당장 참여할 이유가 없다"면서 "최대한 늦게 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각 병원은 서류 전송 후 의료정보 보안 문제가 터지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데 민감하다"면서 "참여 병원에 수가 등 별도 지원이 없는 것도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병원들이 뒤늦게 참여해도 물리적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한 EMR 업체 관계자는 "각 병원에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최소 한 달 이상 걸린다. 지금 계약해도 실제 시스템 연계는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는 개별 병원이 결정할 사안인 만큼 따로 참여 독려를 하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협회 관계자는 "병원급 참여는 다른 병원 상황을 보면서 점차 늘어날 거라고 본다. 환자 편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보험사들은 약 1200억원을 투입해 시스템 구축·확산에 나선 만큼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원마다 참여 여부가 엇갈리면 소비자 민원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 청구 간소화는 환자에게만 이익이 되는 게 아니라, 병원들도 서류 작업 축소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전산화가 지연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실손 청구 간소화 의무 불이행 병원에 대한 처벌 조항이 따로 없어 병원들이 참여를 미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참여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큰 진전이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도가 빠르게 자리 잡으려면 결국 의료계가 관건이다. 어떻게든 참여 설득을 이어갈 것"이라면서 "처음부터 참여율 100%는 안 되겠지만, 환자 요구 등 병원들이 점차 들어오게 될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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