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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한국이 베트남 파병때 이익 얻은 것처럼... 北, 러에 큰 대가 바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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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파병에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도 요동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러시아 우방국 중 유일하게 러시아에 무기·병력을 보내는 ‘베팅’을 통해 상당한 경제·군사적 반대급부를 챙기고, 장기적으로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을 확약받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업고 북한이 더 과감한 도발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본지는 보수·진보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하거나 조언한 전문가 4인에게 북한 파병의 의미와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 우리의 대응 방안 등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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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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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영우 “러에 포탄·병력 빚 지운 北, 방공무기·전투기 요구할 듯”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이번 파병 결정은 김정은이 러시아에 완전히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는 뜻”이라며 “그동안 중국에 대북 제재 풀어달라 호소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오자 러시아를 잡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 전 수석은 20일 본지 통화에서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이를 규탄했던 유엔총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5개 국가 중 하나였다”며 “이후 러시아에 포탄 및 미사일을 제공하면서 러시아에 계속 빚을 지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북한의 파병은 결국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북한이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중국이 아닌 러시아에 베팅했다는 것이다.

천 전 수석은 “러시아는 향후 북한이 빚을 갚으라고 청구할 때 거절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며 “북한이 당장 군사기술과 장비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무기 기술보다 군사위성의 ‘눈’ 역할을 해줄 광학기술 및 합성개구레이더 기술과 노후화된 방공망을 대체할 방공 무기 및 신형 전투기를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천 전 수석은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에너지 지원만 해주더라도 문제”라며 “식량 에너지 받는 게 당장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북한이 계속 제재를 견디면서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천 전 수석은 “러시아가 한국의 완전한 적대국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전제로 대러시아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여전히 살상 병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 무기 수출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살상 무기 수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천 전 수석은 북한의 파병이 우크라이나전 판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는 “1만명으로 전세를 바꾸고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열심히 싸우지도 않을 것”이라며 “젊은 북한 군인들은 ‘누구를 위해 우리가 남의 전쟁에 총알받이가 돼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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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조선일보 DB


◇ 이용준 “우크라 전장 북한군 상대로 전단·방송 등 심리전 필요”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20일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북한은 과거 한국이 베트남전 파병으로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군사적 이익을 얻은 것과 비슷한 결과를 바랄 것”이라며 “특히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무기 체계 첨단 기술 확보, 전투 경험 축적 등도 원하지만 지금 당장은 달러가 더 급하다”고 했다 .

외교부 북핵 담당 대사, 차관보 등을 지낸 이 이사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북한은 오랜 제재와 팬데믹 국경 봉쇄 등 여파로 정권 유지 자금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1만명 파병 대가로 1억달러를 받는다고 가정해도 북한에는 상당히 의미 있는 금액”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현금 대신 유엔 대북 제재로 북한에 공급이 제한된 원유 등 현물로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북한군 파병이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일단 발을 담근 이상 추가 파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한국에 꼭 나쁘지만은 않은 측면도 있다”고 했다. 북한군의 핵심 전력이 빠져나가는 만큼 한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북한의 파병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역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 전장에 주둔하는 북한군을 대상으로 한글로 쓴 전단과 방송을 전달하는 심리전을 실시해야 한다”며 “북한의 최정예 부대원들이 전장을 이탈해 한국행을 택할 수도 있고, 그 규모에 따라서는 북한의 추가 파병을 억제하는 효과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동맹을 체결한 건 한국과 북한이 전쟁하면 북한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고, 이보다 한국에 더 적대적 조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러가 무기를 주고받고 군사동맹을 체결해도 우리가 말로만 경고를 하니 저들이 선을 계속 넘는 것”이라며 “일단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시작하고 러·북 양국의 행태에 따라 지원 규모와 범위, 폭을 조정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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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위성락 의원.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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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락 “한미일 공조 강화는 맞지만... 러·중과 외교공간 있었어야”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위성락 의원은 20일 본지 통화에서 “김정은은 러시아라는 확실한 ‘뒷배’, 예전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같은 진영에 있는 중국, 자체 핵·미사일 역량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몸값을 높여 미국과 새로운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위 의원은 “북한은 러시아의 우방국 중 유일하게 무기와 병력을 모두 지원했다. 김정은은 러시아에 파병까지 해줬기 때문에 유사시에 러시아가 같은 식으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위 의원은 “핵 개발로 국제적 고립 속에 있던 김정은이 미·중, 미·러 대립이 격화되는 신냉전의 진영 구도를 체제 존립의 활로로 삼으려 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했다.

위 의원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잠수함 같은 민감한 군사기술은 러시아가 북한과 공유를 안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건 과거의 안일한 상식”이라며 “지금 북·러는 체제 존립이 걸려 있는 사생결단의 게임을 하고 있는데 기존의 핵 비확산 원칙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의 핵 자산 운용을 전제로 한 한·미 동맹 조건 아래서는 한반도 비핵화,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북핵 문제는 이미 종결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위 의원은 “한·미와 북한이 군사적 충돌을 하게 되면 러시아의 한반도 파병까지 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이제 북한 비핵화, 한반도 통일 등 한국만의 외교 어젠다 추구는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중·러와 수교를 맺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성공 이후 고립된 북한은 핵 카드를 꺼내 들었고,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에서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푸틴과 김정은의 북·러 군사동맹 체결로 이어졌다”며 “한·미·일 공조 강화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맞는 방향이지만 동시에 중·러와의 외교 공간이 담긴 한국형 외교 좌표도 있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한 방향으로만 저돌적으로 돌진한 결과가 현재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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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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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제 “美에 체제 보장 받으려던 北, 러 밀착이란 새 생존길 찾아”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김정은에겐 트럼프와의 담판이 빈손으로 끝난 ‘하노이 노딜 쇼크’가 엄청났고, 이후 다른 방식으로 생존할 길을 모색해온 게 북·러 밀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조 전 원장은 20일 본지 통화에서 “북한은 1994년부터 미국과의 핵 협상을 통해 체제 보장을 확답받으려고 했고, 트럼프와의 1차 싱가포르 회담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컸던 게 분명한데 지금은 미국의 대북 목표가 ‘레짐 체인지’에서 변함이 없다고 깨달은 듯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 전 원장은 “김정은은 지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어질 가능성이 전혀 안 보이니 이번 러시아 파병으로 에너지·식량 문제 해결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실전 경험 습득 등을 통한 군사동맹 강화 등을 노리고 있다”면서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밀착은 미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본인들의 입지를 높여줄 선택”이라고 했다.

조 전 원장은 “미 대선서 해리스 후보가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 2.0′ 노선으로 갈 테니 북한으로선 별달리 고민할 것 없이 지금 태도 그대로 가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변수가 많아진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는 임기 4년 내에 성과를 만들기 위해 김정은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김정은도 ‘통미봉남’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파병으로 북한의 젊은 군인들이 ‘바깥세상’에 눈을 뜨게 돼 장기적으로 체제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게 봤다. 조 전 원장은 “지금 북한 군인들은 전쟁터로 가는 것으로, 거기선 서로 죽고 죽이는 목불인견의 일들이 벌어진다”면서 “일부 탈영병이 생겨난다 한들 그게 북한 체제의 공고함에 구멍을 뚫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했다.

조 전 원장은 파병 보도에 대해 북한이나 러시아가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선 “파병이 사실이라 해도, 기존의 러·우 전쟁이 제3자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확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발표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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