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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영등포 형사들이 본 인천세관 외압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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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등포서 세관 외압 의혹에 대한 주목도가 가라앉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정치적 사건이 연달아 터진 이유로 풀이된다. 경찰 윗선과 용산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1년이 넘었으나 직접적인 증거는 드러나지 않은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경찰 안팎에서는 답답함을 표하는 동시에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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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등포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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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서 마약을 들여온 마약 밀수입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 내부에서는 역대급 수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마약 조직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세관 직원들을 추적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례적 압력과 좌천 등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들은 1년간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

역대급 수사

경찰이 압수한 마약은 90만여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가 834억원에 달했다. 실제 경찰서 브리핑장에는 마약 조직이 밀수했다가 적발된 증거품들이 깔렸다. 지금까지 국내에 유통한 전체 마약 규모는 파악된 것만 74kg으로 경찰이 수사한 밀반입 규모로는 역대급이다.

이들은 몸에 마약을 부착하는 ‘인편’으로 밀수를 하거나 나무 도마에 마약을 숨겨 화물편으로 들여오는 방식을 이용했다. 경찰은 일당을 중국과 한국, 말레이시아에 거점을 둔 거대 국제 마약 조직으로 파악했다. 얼마 뒤 한 언론은 최초 경찰 브리핑서 중요한 내용이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마약 밀수를 도와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게 핵심이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서 “세관 직원들이 입국을 도와줬다”는 말레이시아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운반책들은 해외 총책이 자신들을 국내로 보내면서 “미리 매수해 둔 세관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안심시켰고, 세관 직원들의 사진까지 보여줬다고 진술했다.

백해룡 전 영등포서 형사과장(경정)은 세관 직원들도 연루됐고 추가 수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을 브리핑에 넣으려고 했으나, 상부서 보도자료 수정 및 언론 브리핑 연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백 경정이 주장하는 첫 번째 ‘수사외압’이다.

백 경정은 외압의 배후로 대통령실을 언급했다. 지난 8월20일 국회서 열린 청문회서 백 경정은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이 외압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백 경정은 “(세관 직원 연루 의혹이 포함된)브리핑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니까 (서장이)용산서 알고 있어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은 “‘용산 개입설’은 사실무근이라며 뚜렷한 물증 없이 진술만 있는 상황서 외부로 브리핑하는 것을 지적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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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경정은 자신의 직속상관이 아닌 다른 부서의 고위 간부에게서 외압성 전화를 받았다며 두 번째 수사외압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마약 수사에 대한 언론 브리핑 직전, 관세청 출신인 조병노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백 경정에 전화를 걸어 브리핑 내용을 물어본 것이다.

백 경정은 세관 직원에 대한 언급을 빼기 위한 압박성 전화였다고 주장했다. 조 경무관은 세관의 업무 협조 요청에 따른 확인 절차였다고 해명했다.

관세청은 이례적으로 많은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연루 의혹을 부인했다. 관세청은 “‘세관 직원이 도와줬다’는 거짓 정보는 마약 범죄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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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룡 경정(사진 왼쪽)과 조병노 경무관 ⓒ고성준 기자·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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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피의자로 입건된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마약 운반책들의 지목만으로 피의자 입건돼 수사를 받아왔다. 직원들은 “백 경정이 주장하는 ‘수사외압’이 있으려면 외압으로 수사가 없었어야 하는데, 지난 1년 동안 본인과 가족들까지 강압적인 수사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운반책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A 주무관이 운반책들의 입국을 돕고 공항 밖 택시 정류소까지 배웅하기도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런데 A 주무관은 당일 자신은 연가라 공항에 없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세관 직원들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천공항 2터미널에는 크게 2개의 세관 게이트가 있는데, 직원들은 어떤 비행기가 자신들의 게이트로 들어올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게 요지다. 마약 총책이 마약을 밀수하려고 작정했다면 양쪽 게이트 중에 운반책들이 어느 쪽으로 나갈지 알 수 없으니, 모든 세관 직원들과 탑승하는 항공사 직원까지 포섭해야 범죄가 가능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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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영등포서 관계자들은 백 경정의 수사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영등포서 한 관계자는 “마약 사건 연루 의혹을 부인하는 세관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억울해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의 수사가 잘못됐다기보다도 권한과 인연이 없는 고위 관계자의 연락이 왔다는 게 중요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백 경정과 10년 가까이 수사해 왔으나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며 “추가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영등포서 출신 한 경감은 “백 경정이 무리수를 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1년간 수사가 진행됐으나 물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건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조병노 경무관 등 흘러간 상황만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세관 직원들의 마약 밀반입 연루 의혹이나 경찰 간부들의 외압 의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와 영등포서의 수사로 판명 날 전망이다. 백 경정은 전 영등포경찰서장을 포함한 자신의 상부 보고 라인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상황이다.

또 백 경정이 떠난 영등포서 형사과는 말레이시아 마약 밀수단의 국내 총책 등 남은 마약 조직을 여전히 추적 중이다. 총책을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면 실제 세관 직원들과 ‘커넥션’이 있었는지, 운반책들의 진술 자체가 거짓이었는지 등 사실관계가 확인될 수 있다.

한편 백 경정은 최근 휴대전화를 3번이나 바꾼 고광효 관세청장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과 수도 없이 통화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고 밝혔다.

앞서 고 청장은 최근 세 차례나 휴대전화를 바꿨다. 지난해 10월15일을 시작으로 올해 7월17일과 21일 총 세 차례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이례적 좌천?

백 경정은 “첫 번째 바꿨을 때는 조병노 경무관과 제가 통화한 그다음 날”이라며 “제가 문제 삼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바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또 공수처 수사서 증거 수집으로 휴대전화를 압수당할까 봐 겁이 났을 것”이라며 “용산(대통령실)과 수도 없이 통화했을 것이라고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휴대전화 압수수색 안 당하려고 바꿨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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