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3 (수)

고향사랑 기부땐 ‘친환경-지역활성화’ 일석이조 답례품을[기고/김병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김병일 삼일PwC 공공서비스센터장


일본 니시아와쿠라무라(西粟倉村)는 오카야마현에 위치한 작은 산간 마을이다. 울창한 삼림 자원 덕분에 오랫동안 임업이 번성했지만, 산업화 이후 마을 주민이 떠나는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됐다. 게다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마을은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고향납세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기부자는 재생에너지원을 조달 및 소유하는 각 시구정촌에 고향세(기부금)를 낸다. 그러면 답례품으로 기부금만큼의 전기량을 쓰고 이는 전기 요금에서 차감된다. 니시아와쿠라무라는 이 제도를 통해 산간 지역의 급경사를 활용한 수력 발전을 보급하는 한편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곳뿐만 아니라 군마현 나카노조(태양광), 오이타현 우스키(바이오매스),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풍력) 등이 고향납세의 답례품으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고향납세는 일본 정부가 지방 소멸과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008년 도입했다. 지난해 기부 총액이 1조 엔(약 8조9786억 원)을 돌파했고, 참여 인원도 역대 최다 수준인 1000만 명을 넘었다. 세액 공제 혜택을 늘린 것뿐만 아니라 답례품 품목을 다양화해 기부자의 선택권을 넓힌 점이 주효했다. 일본 정부는 소고기나 과일 등 지역 특산품뿐 아니라 묘지 이장, 은어 낚시 레슨 등 서비스로 답례품 범위를 넓혔다. 또한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때 기부자가 생산자와 생산지는 물론이고 에너지원을 선택하도록 했다.

특히 재생에너지를 답례품으로 활용한 것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제대로 읽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소비자는 가격이나 편의성보다 환경이나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등을 고려해 의사 결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올해 초 31개국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소비자의 85%가 기후 변화의 파괴적 영향을 경험했으며 지속 가능하게 생산되거나 공급된 상품에 대해 평균 가격보다 9.7%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고향납세에 동참한 기부자는 전기 요금을 아낀다는 생각과 함께 탈탄소화 노력에 동참한다는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기부 행위에 대해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제공한 것으로, 비(非)금전적 인센티브에 해당된다. 에너지를 아낀 만큼 현금으로 돌려받는 에너지 캐시백 등 금전적 인센티브와는 다른 차원의 보상인 셈이다.

고향납세의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는 기업의 기부 참여를 허용한 점이 꼽힌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재원이 지역 사회에 유입됐고, 기업의 참여로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제 혜택과 함께 글로벌 시장의 높아지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구에 부응하게 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일본의 고향납세를 벤치마킹한 고향사랑기부제를 2023년 도입했다. 하지만 답례품이 1차 농산물에 머물러 있고 개인 기부자에게 의존하다 보니 기부 규모 면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소멸되는 지역 활성화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려 판을 키우고 싶다면 일본처럼 답례품 품목을 다양화하고 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등 여러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병일 삼일PwC 공공서비스센터장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