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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미스터 위기관리'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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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별세. 향년 89세
전문경영인 출신 6선 국회의원 지내
MB정부 당시 '상왕' 지적에도
주요 현안마다 중재-위기관리 등으로 호평
볼리비아서 리튬 염수 제공받아 자원외교 힘쓰기도


파이낸셜뉴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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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5년생인 고인은 포항 동지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켐벨대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코오롱 1기 신입 공채사원으로 입사해 코오롱과 코오롱상사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당시 우리나라의 주력인 섬유산업의 기틀을 다지며 산업화 초기 대한민국 수출을 이끄는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1988년 정계에 입문해 포항 남.울릉 지역구에서 내리 6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부의장, 운영위원장, 재정경제위원장, 한일의원연맹회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주요당직을 두루 거쳤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 시절 '상왕'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국가와 당이 큰 위기에 처할 때마다 투철한 국가관과 혁신과 화합의 정신으로 위기극복에 앞장서 '미스터 위기관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실제 1998년 IMF 당시 야당 재경위원장이나 정책위원장으로서 금융개혁법 처리에 중재 역할을 한 것과,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여파로 박근혜 당대표 천막당사 시절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다.

당시 전여옥 대변인은 '천막당사' 영화의 제작자로 이 전 부의장에 대해 "모든 것이 그 분 손에 의해 이뤄졌다"면서 "그러나 그분은 모든 공을 주연배우와 감독, 숟갈이라도 얹으려는 조연과 조감독들에게 돌렸다. 앞장서 일하되 자신은 드러내지 않는 리더십이었다"고 말했다.

2006년에는 한미관계 정상화에 노력한 야당 국회부의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당시 한나라당 국회부의장으로서 박진, 나경원 의원 등과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조야에 전시작전권 조기 반환의 문제점 등을 워싱턴D.C. 현지에 알리기도 했다.

친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상왕'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 이 전 부의장은 당의 통합에도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전 부의장 측근은 "이 전 부의장은 젊은 의원들과 밤늦게까지도 소통의 시간을 가졌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경선 상대이기도 했던 박근혜 전 대표와 가교역할을 하며 당정의 힘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특사로도 활동한 이 전 부의장은 공직 생활 말년엔 우리나라가 2차전지 생산 세계 1위 국가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원재료 '리튬' 확보에 가장 공을 들였다.

리튬 강국 볼리비아에 수차례 방문한 이 전 부의장은 모랄레스 대통령과 여러 차례 면담을 통해 볼리비아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외부에 유출을 금하던 우유니호수 리튬 염수 수백 리터를 제공받았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충분히 연구할 수 있도록 하면서 2차전지 강국으로 변모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리튬의 중요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점을 감안, '자원을 경영하라'는 책을 직접 쓰고 중장기 자원투자의 중요성 인식을 확산하는데 힘쓰기도 했다.

이 전 부의장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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