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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최준영의 월드+]북한군 파병과 한반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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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전쟁 장기화로 보병 부족

북·러 전략적 동반자 조약따라

북한군 1만여명 가세땐 큰 변화

러는 에너지·식량외 +α 지원

北 軍현대화와 실전 경험 축적

한반도 유사시 러 개입 우려도

남북 화해협력 전략 수명 다해

아시아경제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15일 우크라이나 신문 키이우 인디펜던트가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3000명의 북한군이 조만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고 보도할 때만 해도 전쟁을 치르는 당사국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설’ 가운데 하나라고 다들 생각했다. 지난 17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북한군 1만명 파병 가능성을 제시할 때도 더 많은 지원을 호소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18일 국가정보원이 1500명의 북한군 병력이 러시아 상륙함을 이용해 러시아로 이미 이동해서 적응 훈련 중이며 총 4개 여단에 해당하는 1만2000명 파병에 북한과 러시아가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곧이어 러시아에서 촬영된 북한 병사들의 보급품 수령과 훈련소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고 피복 제공을 위한 한글 설문지까지 CNN을 통해 등장하면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점차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물론 아직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이들도 병력 파견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이 실제로 전투 병력으로 투입될 것인지에 대해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의 두 개 국가론 주장과 헌법 개정, 그리고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도로 및 교량 폭파, 평양 상공의 무인기 발견 등 여러 가지 상황이 숨 가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왜 이 시점에 파병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를 도와 파병하는 것은 지난 6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체결된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따른 것이다. 동 조약 4조는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원조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는 일관되게 전쟁이 아닌 ‘특수군사작전’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러시아는 전쟁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지역을 침공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놓였기 때문에 북한의 파병은 조약에 따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파병은 러시아와의 안보 관계 격상을 통한 정권 안보 강화부터 인력파견을 통한 경제적 이익추가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북한은 과거 중동 및 아프리카 등에 여러 차례 소규모 군사고문단 등을 파병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북한에 해외 파병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아시아경제

지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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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공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병력 부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론을 통한 정찰과 공격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워진 상태에서 소규모 보병부대를 통한 침투와 공격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잘 훈련된 보병이 장기화한 전쟁을 통해 고갈되면서 전과확대는 매우 느리게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 5월을 전후해 푸틴 대통령에게 추가 동원령 발동을 요청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민심 이반 가능성을 들어 거부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부대 소속의 경보병 여단 북한군 1만2000명이 가세한다면 러시아로서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북한군이 직접 우크라이나군을 상대하는 전선에 투입될지, 러시아를 침공한 우크라이나군 소탕에 동원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지쳐있는 러시아군으로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은 명백하다.

북한군의 파병이 러시아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 측의 제안에 대해 러시아가 동의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려졌지 않지만 양측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격상될 것임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파병의 대가로 무엇을 제공할지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북한을 어렵게 했던 에너지와 식량 지원만 이루어지더라도 북한은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대규모 홍수 및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으로서 러시아의 지원이 현실화한다면 천군만마와 같을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강화는 유사시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며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안보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북한군이 실제로 어느 수준의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향후 러시아의 지원을 통한 군 현대화와 더불어 실전을 통해 미래전에 적합한 교리를 정립함으로써 전투 능력 향상을 도모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우리로서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구축했던 기존의 중후장대형 무기체계를 미래전에 적합한 체계로 개편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실전을 통한 경험을 축적할 경우 해결해야 할 과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북한의 파병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 온 한반도 주변 환경의 변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한반도 주변은 대만을 둘러싼 갈등을 포함해 갈수록 복잡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에만 시선을 집중하면 변화에 둔감해지고 상황을 오판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탈냉전 구도 속에서 작동할 수 있었던 화해 협력을 통한 긴장 완화와 통일이라는 비전과 전략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중 갈등으로 대표되는 강대국의 입장변화에 따른 국제질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과 자세를 갖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20년 전 남북 정상회담의 감격에 집착하고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 방법과 수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할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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