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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문화와 역사 애호가라면 심심할 틈 없는 천년 고도 [액티브 시니어가 살고 싶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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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주 – 자연과 유적의 숨결을 배우고 느낀다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 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한국일보

경주에서 문화유산 해설사로 활동 중인 이용호(앞줄 가운데)씨가 지난해 10월 시니어일자리사업인 '박물관 도슨트' 사업단 심화교육 중 경주박물관 수장고인 '천년신라보고' 견학을 마친 후 수장고 정원에서 수강생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호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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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수도권에서 자란 베이비붐 세대 대다수가 간직하고 있는 학창 시절 추억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새벽에 땀 흘리며 올랐던 토함산, 단체 사진을 찍던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등. 그래서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에게는 왠지 모르게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곳곳에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문화재와 유적들이 잘 정비돼 있고, 경주 어디서든 걸어서 10분 이내면 오랜 기간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을 만날 수 있다. 또 KTX가 연결돼 수도권에서 찾기 쉬운 교통의 요지이자, 동해가 지척이어서 문화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높은 액시세대라면 한 번쯤 살고 싶은 후보지 명단 최상단에 위치할 만하다.
액티브 시니어란
1980년대 미국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50~75세로 경력과 경제력 및 왕성한 소비력을 갖춘 세대’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정의하면서 ‘어제의 노인과 다른 오늘의 노인’이라고 범주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액티브 시니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대체로 1964~74년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을 ‘2차 베이비 붐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55~63년생인 ‘1차 베이비 붐 세대’와 비교하면, 고도성장기에 성장한 덕에 고학력과 노후 준비가 잘된 이들의 비중이 높다. 액티브 시니어의 표준화된 한국어 번역이 아직 없어, 기획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로 쓰되, ‘액시세대’로 줄여 부른다.

경주는 이런 액시세대들이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여러 프로그램을 잘 갖추고 있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 문화재를 답사하며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문화재 아카데미를 비롯해 전통 공예, 서예 도자기 등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재 보존 활동 프로그램 등이 연중 수시로 진행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문화재 해설사로 활동하기 위한 교육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국립경주박물관이 후원하는 경주박물관대학은 국내 최고 수준의 문화재 교육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1년 과정인 기초반의 경우 주 1회 이론과 현장 학습으로 진행되는데,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은퇴자들이 ‘경주 1년 살기’를 결정할 정도로 수준 높은 강의로 알려져 있다.

경주가 은퇴자를 끌어들이는 또 다른 매력은 자연환경이다. 경주에서 만난 은퇴자는 “고층 건물이 없어 시야가 시원하고 마음이 안정된다”며 “게다가 도시 어디에서도 걸어서 5분이면 숲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경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도심을 감싸고 남산 토함산 보문호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경주시도 이처럼 다른 지역에서는 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매력으로 액시세대가 살고 싶은 도시로 가꾸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관광지만 벗어나면, 쉽게 마주치게 되는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다. 이곳에 정착한 은퇴자는 이주 초기 동네 구멍가게에서 겪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가게 주인이 문을 살짝 연 채 내다보길래 원하는 물건이 있는지 물었더니 “들어와서 찾아보라”고 해서 당황했다고 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관광지 밖 식당을 찾았다가 주인이 불친절해 불쾌했다는 경험을 얘기하는 방문객이 여전히 있다. 유서 깊은 동네마다 어느 정도 폐쇄적 문화가 남아있기 마련이지만, 좀 더 외지인을 개방적으로 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일보

경주 액티브 시니어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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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개발한 ‘액티브 시니어 지표’를 통해 경주가 액시세대가 정주하기 위한 여건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액시세대의 사회활동 여건을 평가하는 ‘문화·여가’ 분야에서는 지자체 차원의 서비스 지표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 점이 눈에 띈다. 다시 점검해 보니 이는 비정부 영역에 이미 잘 갖춰진 인프라와 서비스 덕에 지자체 지원이 타지역에 비해 낮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지자체 차원에서는 지역 고령자들에게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제공해 사회적 참여와 자립을 돕는 일자리 교육과 정보화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지만, 문화 프로그램이나 문화 활동 지원은 전국 평균에 비해 낮았다. 그런데 이는 경주박물관회 같은 민간단체나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지역 기업의 역할이 활발한 덕에 지자체가 직접 사업을 운영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기반시설과 골프장 테니스장 축구장 등 지자체의 역할이 필수적인 부분의 인프라 점수(인구 1만 명당 이용 가능시설 수)에서는 경주가 3.05로, 전국 평균 2.19보다 높았다. 고령 인구를 대상으로 한 시설 수도 경주는 2.67로, 전국 평균인 2.28보다 많았다. 경주는 문화 여가 측면에서 액시세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잘 갖춰진 지역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일보

경주 부문별 인프라 요소


반면 의료 서비스는 아직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띈다. 의료 서비스 요소 평가는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를 대상으로 한 구강, 안과 치료 지원과 예방접종, 간병, 의료비, 건강진단·보험 지원 등 6가지 서비스 시행 여부를 살펴봤는데, 경주는 건강진단 및 보험 지원과 구강 치료 관련 지원 서비스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인프라 측면에서는 병상수와 같은 물리적 자원은 비교적 충족되었으나, 의사 수와 전체 의료 인력 수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치다. 경주에는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이 2차 의료기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올해 2분기 기준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52개의 병원 중 10개가 경주에 위치하는 등 의료기관 자체의 규모는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은 부족하다. 물론 이는 의료 인력의 수도권 편중이라는 전국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액시세대의 생활 편의성을 평가하는 주거 및 모빌리티(이동성) 측면에서 경주는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모빌리티에 있어서 우수한 철도 인프라와 함께 대중교통 지원 정책도 잘 갖추고 있다. 경주역은 경부고속선, 중앙선, 동해선 등 세 개의 주요 철도 노선이 교차하는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수도권에 접근하는 KTX와 SRT 등 고속철도 열차가 정차한다. 또 고령자의 이동 편의성을 돕는 다양한 지원이 있는데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반면 노인 공동생활 가정이나 노인 복지주택과 같은 주거 인프라는 부족하다. 하지만 최근 경주 천근동이 복합 휴양형 은퇴촌 ‘천년건축 시범마을’로 선정되는 등 액시세대를 위해 부족한 주거 시설을 확충하려는 지자체의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천년고도의 경주는 오랜 역사 속에 특별한 매력을 가진 도시이다. 은퇴자들에게 풍부한 문화자원은 다양한 기회와 혜택을 제공해 준다. 다만, 도시 전체가 ‘문화의 보고’라는 점은 기본적인 주거개선조차 어렵게 만드는 장애로도 작용한다. 문화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안정적 거주를 위한 세심한 정책적 고려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료 정리: 정지송(포스텍 첨단원자력공학부 박사과정), 정지훈(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전공 석사과정)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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