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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황근의 시선] ‘K콘텐츠 펀드’에 쏠린 기대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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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국내 미디어 사업자 지원은 긍정적
창의성 제약·단기성과 집중 부작용
문화산업의 정부지원 의존 경계해야


이투데이

1990년대 중·후반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사랑이 뭐길래’ ‘대장금’ ‘겨울연가’ ‘야인시대’ 같은 드라마들이 일본·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인기를 끈 것이다. 본격적인 한류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영리 목적보다는 한국문화 확산에 더 의미를 두었던 시절이다.

어쩌면 이것이 최근 여러 장르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K컬처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간간이 한국 영화나 가요들이 몇 나라에서 주목받은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팬덤이 형성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이제 대중문화뿐 아니라 음식 같은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한국 미디어 콘텐츠 전성기를 만들어낸 것은 정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KBS·MBC 같은 공영방송 드라마가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국가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많은 방송영상 콘텐츠 지원사업들이 추진되어 왔고 또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해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단기간에 정량적 성과를 중시하는 관 주도의 지원 시스템이 도리어 문화적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원 대상의 숫자와 성과에 집착해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장기적 지원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사업들은 공공 재원을 성과와 관계없이 사업자들에게 분배해주는, 지원 자체가 목적인 ‘고객 정책(client policy)’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심지어 정부나 여러 공공기관들의 정책적 목표들이 지나치게 개입되면서 한류·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도 있다. 한류 인기에 비례해 커지고 있는 혐한류 분위기 조성에 한국 정부의 글로벌 진출 정책에 대한 현지인들의 저항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거창하게 한류 확산을 표방하면서 의도성을 가지고 제작되었던 드라마나 콘텐츠가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K-콘텐츠·미디어 전략 펀드’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한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내준 방송 콘텐츠 IP 확보 지원을 위해 KBS·CJ ENM 같은 방송사와 3개 기간통신사업자 그리고 금융기관들까지 참여하는 매머드 펀드다. 외형으로만 보면 제작비 급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수 공공기관들이 참여하게 되면 펀드 운영의 책임성과 효율성은 도리어 약화될 수 있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라는 모펀드가 운영한다고 하지만, 많은 공공기관들이 참여하면 펀드운영 과정에서 정부 의지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그동안 제기돼왔던 정부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방송 콘텐츠 지원사업에 한정되지 않고, 정책·산업 자문, 협력사업 등 펀드 목표들도 매우 포괄적이다. 주무부처가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업자들의 콘텐츠 제작에 정부 개입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지원사업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 콘텐츠 제작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매개체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미디어 콘텐츠 같은 문화상품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B2G(Business to Government)’에 대한 유혹이다. 콘텐츠 산업의 창의성을 크게 제약하고 결국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산업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특히 미디어 콘텐츠가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다른 산업처럼 국가가 앞장서서 지나치게 정책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경쟁 같은 환경 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증권시장에 교수가 나타나면 주식을 팔아야 하고, 문화시장에 정부가 나서면 발을 빼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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