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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장애인 접근권 공개 변론…"국가가 의무 방치" vs "꾸준히 개선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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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접근권 국가 배상 사건 공개 변론

국가의 부작위·배상 책임 놓고 양측 공방

뉴시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0.23. yes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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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경사로와 같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소규모 매장에 부여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대법원에서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A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 청구 소송 상고심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해당 사건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규정한 시행령에서 시작됐다.

1998년 제정된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소매점의 범위를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 이상의 시설'로 정했다. 시행령 규정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중 97% 이상이 의무에서 면제된다. 해당 시행령은 지난 2022년이 돼서야 '바닥 면적 50㎡ 이상'으로 강화됐다.

이에 A씨 등은 국가가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아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 접근권이 침해받았다며 국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국가가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공개 변론에서 원고 측은 국가가 24년간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은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대리인 이주언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의 설치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정하고 접근권과 이에 따른 국가 의무를 명시한 것"이라며 "문제는 면적 300㎡ 이상에 이르는 소매점 거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행령이 만들어진 1998년부터 20여년간 통계를 보면 0.1%에서 5% 남짓"이라며 "결국 쟁점 규정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접근권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위헌·위법적인 규정은 제정 즉시 개선돼야 했다"며 "시행령이 개정되는 데에는 통상 5개월에서 7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사건 규정은 개정되는데 24년이 걸렸다"고 전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장애인등편의법은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정됐지만 취지에 맞지 않은 규정으로 인해 수많은 소매점들이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그 결과 장애인들의 일상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배 이사는 "법의 취지를 살려 면적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장애인의 접근권을 온전하게 보장해야 한다"며 "다시는 휠체어 사용자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책임을 물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국가가 부족하지만 장애인 접근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고 반박했다.

피고 측 대리인 이산해 변호사는 "국가는 장애의 다양성 그리고 장애인 선택권을 중요하게 고려해 장애인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을 확대했다"며 "2024년까지 장애인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장애인등편의법을 87차례나 개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접근권 강화 관련해 여러 법률이 시행됐는데 주요한 것이 장애인 활동 지원법이다.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거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지체 정신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 등을 지원하는 법"이라며 "소매점을 이용하는데 구매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직접 이동하는데 보조를 받거나 할 수 있다"고 했다.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팀장은 "정부는 장애 당사자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그간 편의 시설에 양적 팽창에서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며 "누군가에게는 느리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정부가 제도와 정책을 방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관들은 질의 응답을 통해 정부 측의 장애인 접근권 향상에 미진했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오경미 대법관은 "20여년간 이런 상태가 유지됐다는 것은 그 장소에 갈 수 있어도 들어갈 수는 없었다는 뜻인데, 쉽게 대체되는 권리라고 말하는 데 놀랐다"며 "온라인 활동으로 쉽게 대체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권영준 대법관은 시행령이 2022년에서야 개정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전국에 면적 300㎡ 이상 시설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원고는 3% 미만, 피고 쪽은 5% 이상이라고 답했다.

조 대법원장은 피고 측을 향해 "법에서 요구하는 시설물에 대해 50% 이상이라도 해놓고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해야 한다"며 "정부 주장대로 해도 5%대 접근성을 두고 시행령으로 우리가 할 바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양측은 국가 배상 성립 여부를 놓고도 공방을 이어갔다.

원고 측은 "현행 국가배상 책임 제도는 국가배상 책임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인정한다는 문제"라며 "최소한 불법성의 확인을 위한 상징적 금액의 배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중권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접근권이 시행령에 의해 유명무실하게 된 이상 불이익이 구체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 측은 "정신적 손해는 규정이 개정되면서 회복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행정입법 부작위와 원고들의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도 섣불리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안병하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고의 접근권 침해로 인해 어떠한 현실적 손해가 발생했는지 주장과 증명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날 공개 변론에서 나온 쟁점들을 검토해 최종 토론을 거쳐 선고할 방침이다. 판결 선고는 2~4개월 내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2paper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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