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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현장의 시각] 코스닥 규제 강화, 제약·바이오 산업 사다리 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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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야당 의원이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주가가 특히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시점이 된 것 같다”고 답했다.

기술특례상장 후 고전하는 기업들에 칼날을 겨눌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상장 이후 부채 이자도 못 내는 소위 좀비 기업을 정리해 이 회사들이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의 불공정 거래 수단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기술력이 있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2005년 도입됐다. 연구소와 실험실에서 시작된 스타트업과 신약 개발사 대부분이 코스닥 상장을 위해 이 제도를 활용한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 기조는 자칫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사다리 끊기와 바이오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현재 코스닥 규정 곳곳에 제약·바이오 산업의 특성이 고려되지 못한 장치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법차손(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 매출 관련 기준이다. 현행 코스닥 규정상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의 50% 이상 법차손이 발생하거나 매출이 30억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기업이 상장 3~5년 뒤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상장 적격성 심사 대상이 된다. 이런 규정 때문에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 위기를 피하고자 바이오 기업이 손실로 잡히는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약 개발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매출 규정을 맞추기 위해 본업과 큰 관련이 없는 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부업에 나선 사례들도 있다.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산업은 사업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분야다. 미국에서 신약 개발 시작부터 상업화까지 소요 기간은 11.9년, 한국은 10.3년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긴 호흡의 투자가 신약 개발과 기업의 성장, 산업의 발전과 직결된다. 이를 고려하면 현행 코스닥 법차손 규정은 바이오 기업들엔 과도한 측면이 있다.

미국 나스닥도 법차손 같은 상장 규정은 없다. 국내 기업들은 현행 코스닥 규정을 업종 특성과 현실에 맞게 완화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상장 바이오 기업에 대해 매출액 기준을 낮춰주고 법차손 규제를 푸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융당국과 국회는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투자 위축’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다. 한국의 의료 역량과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 됐다. 미국과 유럽계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일찍이 선점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여러 국내 기업들이 기술 수출과 사업 수주, 신약 허가·출시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주요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고, 보건 안보 측면에서 제약·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을 뒷받침해주는 정책·제도는 약하다. 최근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대규모로 이탈해 미국과 일본 증시로 눈을 돌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성장 사다리를 끊지 않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자본 생태계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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