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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유럽선 유명 작곡가, 한국선 간첩…故윤이상 ‘동백림’ 57년만 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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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이상 작곡가 부인과 자택정원에서. 중앙포토



독일에서 활동하던 중 간첩으로 몰려 실형을 받았던 고(故) 윤이상 작곡가의 ‘동백림 사건’ 재심이 57년 만에 시작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권순형)는 24일 윤이상 작곡가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관한 재심 첫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여전히 유죄를 주장했다.

1917년 통영에서 태어난 작곡가 윤이상은 40세 때 유럽으로 떠나 활동하던 중 서독에 거주하면서 몇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출신 인사들과 교류한 데 대해 간첩죄‧국가보안법 위반이 적용돼 1967년 체포됐다. 일명 ‘동백림’사건이다. ‘동백림’은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을 일컫는 말이다. 동백림 사건은 이곳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을 적발했다며 중앙정보부가 1967년 7월 대대적으로 발표한 사건이었다.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노 등 독일 거주 예술인, 학자들이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행위를 했다는 거였다.

윤이상은 1967년 12월 1심에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에선 간첩죄는 무죄를 받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5년, 대법원 파기환송 끝에 징역 10년의 형이 확정됐다. 1969년 2월 대통령 특사로 석방돼 떠난 뒤 생전 다시 귀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2006년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재조사 끝에 ‘박정희 정권이 당시 부정선거 이후 여론 무마를 위해 과장‧왜곡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고 밝혔고, 2020년 유족이 재심을 청구해 올해 7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를 확정하며 이날 재심이 시작됐다.



檢“유죄 증거 유지” 尹“고문으로 한 수사, 전부 불법증거”



이날 재심 첫 공판엔 청구인인 윤씨의 유족은 직접 출석하지 않았다. 윤씨 측 변호인은 “처음 수사 개시부터 불법 납치‧감금으로 시작돼 이후 계속 고문‧강압수사로 만들어진 조작된 사건이라 무죄”라며 “또 기존 판결에서 피고인의 검찰 진술조서, 법정 진술, 증거물 2개를 가지고 유죄라고 했는데 이것 모두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고, 검찰에서 추가 증거도 없으므로 적어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라고 주장했다. “피고인 윤이상은 정신적 문제 발생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겪을 정도였다”고도 했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당연히 기각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불법 구금 부분은 다투지 않는다”면서도 “구금 외에 가혹행위 부분은 입증된 바 없고, 따라서 검사가 작성한 수사서류, 피의자 신문조서, 공판 서류 등의 증거능력은 인증되며 유죄 판단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이라 법원 판결문 외에 다른 기록 확보가 용이하지 않음을 언급했다. 당시 공판기록, 증거기록도 아직 제출되지 않았고, 초기 기록을 가지고 있을 육군검찰단에서는 ‘이전 기록이 검색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보냈다고 했다. 검사 역시 “전산으로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긴 한데 실물이 그대로 있는지 여부는 확인해봐야한다”고 했다.

검사는 과거 유죄 판결을 받았을 당시 공판조서 등을 그대로 증거로 신청하겠다고 했지만 윤이상 측 변호인은 “현행 형사소송법에 의해 열리는 재심인데 과거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된 과거 형사소송법 증거”라며 “혹시 그 증거들이 채택돼 다퉈야한다면 위헌법률심판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재판부는 증거 확보를 위해 12월 19일 한 번 더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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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타계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셍의 유해가 23년 만인 2018년 고향 땅인 경남 통영시로 귀향 하는 모습. 경남 통영시 통영추모공원 내 공설봉안당 앞에서 윤이상 선생의 유해를 부인인 이수자 여사가 이송하고 있다. 뒤에는 김동진 통영시장 모습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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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10년이 확정된 뒤 카라얀(지휘자), 스트라빈스키(작곡가) 등 세계 유명 음악가들이 구명운동을 펼쳐 2년 만에 풀려난 윤이상은 1971년 당시 서독으로 망명했다. 이후 유럽에서 활동을 계속하다 1995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과거엔 국내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작곡가였다. 민주화 이후 윤이상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그를 기리기 위해 2002년엔 고향인 통영시에서 ‘통영국제음악제’를 만들어 봄‧가을마다 음악 축제를 열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클래식 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2003년 시작된 ‘윤이상 콩쿠르’도 국내 신진 음악가들의 등용문으로 꼽히는 유명 콩쿨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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