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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GEF 스타트업 이야기] 〈50〉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를 같이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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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함성룡 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CFP)


정기 검진을 가는 날이었다. 항상 기대감과 설렘이 함께하는 날이고,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배가 부른 아내의 손을 잡고, 우리는 곧 만날 아기의 건강을 확인하러 가는 길. 산책을 하듯 걸으며 서로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아기의 첫 웃음은 어떨까, 눈을 누구를 닮았을까 우리의 대화는 너무나 평범하여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큰 걱정 없이 병원에 도착했고, 마치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의 아기 심장 소리는 마치 우리의 삶에 '희망'의 엔진소리처럼 들렸다.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현생의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아기의 존재는 그 모든 것 위에 놓인 가장 큰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이렇게 더 완전한 가족이 될 준비를 했다.

기다리던 출산일이 다가 왔고, 아내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미리 말씀 하셨다.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고 음악 소리가 커지면 지나온 여정의 마무리가 거의 왔다는 신호라고, 음악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고생했다고 사랑한다고 귀에 속삭이 듯 얘기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출생신고와 사망신고서를 함께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어디에도 서 있을 수 없었다. 우리의 너무나 평범하여 더 따뜻하게 느껴지던 순간은 이렇게 지나왔다.

너무나도 따뜻했던 순간, 어디에도 서 있을 수 없는 나약함. 어쩌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지 아닐까?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는 마치 아이가 태어날 때 느끼는 설렘처럼, 가능성과 기대감이 넘친다. 그러나 그 설렘은 현실에 부딪히면서 너무나 빨리 사라진다. 처음에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희망은 점차 빛을 잃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잊혀져간다.

상식이 사라져가는 사회는 아이의 출생신고와 함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다. 시작과 함께 그 미래는 이미 닫혀버리고, 설렘과 기대는 단지 환상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소소한 행복조차 쟁취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과거의 역사도 한결같다. 싸우고, 정복하고, 죽이는 과정을 거친 인물들이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인물'로 소개된다. 이는 우리 인간이 어느 한 순간도 다수가 상식적인 생각을 함께 공유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 사회는 언제나 갈등과 폭력 속에서 진화해왔고, 상식이라는 것은 늘 소수에 의해 희망처럼 이야기되었을 뿐, 다수의 공감대를 이룬 적은 거의 없었다.

단지 우리가 그 과거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것이 오래 전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다. 지금의 사회는 인권, 존중, 인간다움, 배려, 화합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과거와는 다른, 더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믿고 있거나, 믿고 싶거나, 믿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사회는 갈등과 이기심이 더욱더 세분화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결국, 너무나 평범하여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우리의 상식적 행복은 희망이고, 여전히 쟁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는 우리 부모님이 살아 왔던 사회이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이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이기도 하다.

함성룡 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C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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