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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에너지토피아]종적 감춘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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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기요금은 최종적으로 당에서 판단할 부분이다."

지난해 4월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뱉은 말이다. 한 나라의 경제 수장이 전기요금 결정 권한을 정부가 아닌 여당이 쥐고 있다고 실토하면서 논란이 됐다. 비판이 거세지자 한 달 뒤에는 "전기요금은 당이 아닌 정부에서 정하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1년도 넘은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을 소환한 것은 최근 전기요금 인상 발표와 오버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전기요금 조정 방안을 내놨다. 가정용 전기요금이나 소상공인이 사용하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건드리지 않았다. 전기요금 인상에 거세게 반발하기 어려운 기업의 전기요금만 올린 것이다. 이를 두고 ‘표(票)퓰리즘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산업용 전기만 올린 것에 대해 정부와 한전은 "서민 경제 부담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소비자 물가지수에 반영되지만 산업용은 그렇지 않다. 산업용 고객은 전체의 1.7%에 불과하지만 사용 전략 양은 53.2%에 달해 요금 인상 효과도 크다.

한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한전의 연결기준 누적 적자는 41조원, 부채는 203조원에 달한다. 국제 연료비가 크게 올랐음에도 요금 체계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손실이 이어졌다. 대규모 적자로 차입금이 급증하면서 하루 이자 비용으로만 122억원이 나가고 있다.

한전은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간 약 4조7000억원의 추가 전기 판매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한 해 이자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전의 재정난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 돈을 결국 반도체, 철강 등 국내 대기업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전 세계적으로 높지 않은 수준임은 분명하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1㎿h당 130.4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7개국 중 35위다. 우리보다 더 싼 곳은 헝가리(120.9달러)와 튀르키예(72.6달러)뿐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1㎿h당 122.1달러로 OECD 35개국중 26위에 해당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두 차례 오를 동안 가정용 전기요금은 2023년 5월 이후 동결 상태다. 가정용 및 일반용 전기요금도 뒤따라 올려야 하지만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현재 전기요금은 총괄 원가 보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전기요금에 원가주의를 적용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전기 생산 원가를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조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에 따른 부작용을 숨기기 위해 전기요금을 억눌러왔다는 비판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산업용 전기만 인상하면서 이 같은 원칙은 무너지게 됐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에 전기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자 에너지 업계는 크게 반겼다. 현재 이 과제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강희종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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